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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강무 행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412
한자 世宗講武行次
영어공식명칭 Sejong Gangmuhaengcha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영규

[정의]

조선 전기 세종이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실시하였던 군사훈련 및 사냥 행사.

[개설]

강무(講武)는 조선 시대 왕이 직접 참가하는 군사훈련을 겸한 사냥행사였다. 국왕의 사냥 행사에는 많은 군사와 백성이 동원되기에 엄격한 명령체계가 유지되어야 했고, 사냥에는 무기까지 동원되기에 강무라고 칭하였다. 강무 의식 절차는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다.

[역사적 배경]

조선 전기 왕들은 왕권 확립 및 안정과 군사력 증대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였다.

[경과]

세종은 22세의 젊은 나이로 보위에 올라 54세에 승하할 때까지 32년간 위대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 특히 국방 분야에서도 투철한 안보의식을 갖고 철저하게 대비하였다. 세종은 국가를 부국강병의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한 군사력 확보와 군사훈련을 위하여 강무를 추진하였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강무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424년(세종 6) 10월 3일 철원 고석정(高石亭) 벌에서 사냥을 하고, 낮참에 거기서 술상도 차리고 풍악도 잡히면서 머무르게 되었는데, 궁중에 있던 대군·제군들이 입시(入侍)하였다.

1425년(세종 7) 3월 17일 다야잔평(多也盞平)과 고석정곶(高石亭串) 일대에서 몰이하였다. 점심참에 고석정 냇가에서 머무르고 술자리를 벌이니 여러 군(君)이 입시하였다.

1426년(세종 8) 10월 9일 철원 고석정에서 몰이하고, 낮참에 그곳에서 머물러 간략한 술자리를 베푸니, 종친과 부마가 들어와 모시었다. 명하여 재추(宰樞)와 대언(代言)에게는 밖에서 먹도록 하고, 군사들에게도 술과 안주를 나누어 주었다.

1433년(세종 15) 10월 2일 재송(栽松)의 들에서 사냥하고, 철원의 대야잔(大也盞)에서 유숙하였다.

1437년(세종 19) 10월 9일 옛 동주(東州) 터에서 사냥하고, 철원 대야잔 들녘에서 유숙하였다.

[결과]

세종은 역대 어느 왕보다도 강무에 적극적이었는데, 『세종실록』에 따르면, 재위 기간 동안 19회에 걸쳐 93일이나 철원 지역에서 강무하였다. 강무는 군사훈련뿐만 아니라 잡은 짐승을 종묘 제사에 바침으로써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국왕의 권위와 통치체제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큰 의의가 있었다. 강무 행렬은 도성과 강무장 사이를 오가며 백성들에게는 주는 전시효과가 컸다.

[의의와 평가]

세종은 한글 창제, 측우기 발명, 농업과 과학기술 발전, 음악과 법제의 정리 등 위대한 업적을 많이 남겼지만, 4군 6진을 개척하여 현재의 영토를 확정하고 국방력 강화를 위해 아버지 태종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강무(講武) 훈련을 실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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