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김화지구 화랑공작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454
한자 金化地區花郞工作隊
영어공식명칭 Kimhwajigu Hwaranggongjakda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8년 04월연표보기 - 김화지구 화랑공작대 발족
해체 시기/일시 1950년 09월 28일연표보기 - 김화지구 화랑공작대 해체
성격 반공 투쟁 단체

[정의]

1948년 4월부터 1950년 9월 28일까지 공산 치하 철원의 김화 지구에 침투하여 반공 투쟁을 하였던 단체.

[개설]

김화지구 화랑공작대는 8·15해방 이후 김화가 38선 이북 공산 정권에 속하자 남한으로 탈출하여 김화 지역 일원에 반공 활동의 거점을 구축하고 반공 투쟁을 감행하였던 단체이다.

[설립 목적]

김화 지역 북한군에 대한 군사정보와 공산당의 활동 상황, 주민들의 동태 등 정보를 입수하여 국군의 작전에 협조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동시에 남북이 분단되고 38선 이북에 속하게 된 김화 지역은 공산 치하에 들어갔다. 열성 공산주의자들의 감시와 탄압이 점점 심해지자 박영환(朴英煥), 박시환(朴始煥), 박재국(朴在國) 등은 근남 지역에 은신하며 활약 중이던 반공 청년 20여 명을 규합한 뒤 1948년 3월 야간을 이용해 산맥을 타고 월남하였다. 이들은 월남과 동시에 경기도 가평 지구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 부대 소속 대북 첩보기관인 화랑공작대의 대원으로 자진 입소하였다. 1948년 4월 소정의 훈련을 이수한 사람들 중 의거 월남한 김화 출신 20명 만으로 구성된 김화지구 화랑공작대가 정식으로 발족하게 되었다. 김화지구 화랑공작대원들은 당시 6사단 7연대의 관리 아래 활동하였다. 화랑공작대의 총지휘는 당시 현역 이등상사[현 중사]였던 김용해(金龍海)가 맡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김화지구 화랑공작대의 주요 임무는 38선을 넘어 김화 지역 북한군에 대한 군사정보와 공산당들의 활동 상황, 주민들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또한 적의 군사시설을 폭파하거나 교란하고 김화 지역 내에 있는 반공 인사와 동조자를 규합하여 대북 공작원들의 활동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여러 차례의 침투 활동 중 은신처가 열성 공산당원에 발각되어 1948년 12월 23일 박영환이 체포되어 총살당하였다. 박시환, 박재국 등은 구사일생으로 포위망을 뚫고 본대까지 생환하였다. 그 후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시까지 김화지구 화랑공작대원들은 수시로 김화 지역에 침투하여 동조자들을 포섭하고 반공 인사들을 규합하여 반공 활동을 펼쳤다. 김화지구 화랑공작대원들의 북한 침투 공작 활동은 국군 작전에도 많은 도움을 주며 큰 공을 세웠다.

[현황]

김화지구 화랑공작대원들은 6·25전쟁이 끝나고 철원이 완전히 수복된 뒤에도 철원군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의의와 평가]

자유를 찾아 월남하여 김화지구 화랑공작대를 발족하고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시까지 목숨을 걸고 침투 공작 활동을 펼친 김화지구 화랑공작대에 대한 지역민들의 자부심이 크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