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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569
한자 張希騫神道碑
영어공식명칭 Janghuigeon Memorial Ston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양지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원미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36년 9월연표보기 - 장희건 신도비 건립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542년 - 장희건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593년 - 장희건 사망
현 소재지 장희건 신도비 -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양지리 지도보기
성격
양식 비좌개석(碑座蓋石)
재질 화강암[개석]|대리석[비신]|화강암[대석]
크기(높이, 너비, 두께) 225㎝[전체 높이]|170㎝[비신 높이]|58㎝[폭]|26㎝[두께]
소유자 장희건 후손
관리자 장희건 후손

[정의]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양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장희건의 신도비.

[개설]

장희건(張希騫)[1542~1593]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사진(士軫), 호는 만헌(晩軒)이다. 장렴(張廉)의 5세손이고 교수(敎授) 김신(金信)의 아들이다.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였다. 중추부사(中樞副使) 겸 훈련부장(訓鍊副將)을 지내고 병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해인 1593년(선조 25) 훈련부장으로 떨치고 일어나 의주(義州) 지방에서 출정하여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장희건 신도비(張希騫神道碑)는 1936년(인조 14) 9월 건립되었다.

[위치]

강원도 철원군 서면 와수리에서 국도 제5호를 따라 화천 방면으로 가면 민북마을 마현리가 나온다. 마현리 북쪽 정면이 양지리이다. 장희건 신도비양지리 쪽으로 세월교를 지나면 군부대 정문 앞에 있다.

[형태]

장희건 신도비는 비의 머리 부분에 개석을 씌운 비좌개석(碑座蓋石) 형태이다. 개석은 팔작지붕이며 자연석을 다듬어 세웠다. 대석은 땅에 묻혀 있어 문양 파악이 어렵다. 개석과 대석은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비신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전체 높이는 225㎝, 비신 높이는 170㎝, 폭은 58㎝, 두께는 26㎝이다.

[금석문]

장희건 신도비는 ‘가의대부 병조참판장공 신도비명(嘉義大夫兵曹參判張公神道碑銘)’이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장희건 신도비6·25전쟁을 겪으면서 매몰되어 있던 것을 수복 이후에 발굴 복원하였으나 비문이 많이 손상되어 있다. 비의 뒷면 아래쪽은 마멸 상태가 심해 일부분은 판독이 어렵다.

[의의와 평가]

장희건 신도비는 조선 후기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출정하여 전사한 장희건의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희생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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