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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585
한자 趙寧夏永世不忘碑
영어공식명칭 Memorial Tablet of Joyeongha[Yeongsebulmangb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학사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원미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78년 03월연표보기 - 조영하 영세불망비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56년 - 조영하 영세불망비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학사리로 이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845년 - 조영하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884년 - 조영하 사망
현 소재지 조영하 영세불망비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학사리 지도보기
원소재지 조영하 영세불망비 - 강원도 김화군 김화읍 관아
성격
양식 비좌개석(碑座蓋石)형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150㎝[높이]|50㎝[폭]

[정의]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학사리에 있는 개항기 문신으로 훈련대장을 지낸 조영하의 영세불망비.

[개설]

조영하(趙寧夏)[1845~1884]는 개항기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豐壤), 자는 기삼(箕三), 호는 혜인(惠人), 시호는 충문(忠文)이고 현령 조병석(趙秉錫)의 아들이다. 1863년(철종 14)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에 제수되었고, 조대비(趙大妃)의 총애를 받아 승정원(承政院) 동부승지(同副承旨)에 발탁되었다. 1882년 전권대신(全權大臣)이 되어 조미(朝美)·조영(朝英)·조독(朝獨) 수호 조약을 체결하였다. 임오군란(壬午軍亂) 후 대원군 납치와 군란 주동자 색출 등 대청(對淸) 외교와 사무를 전담하여 국왕과 민씨 일족의 신임을 받고 사대 보수 세력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 때 피살되었다. 조영하 영세불망비(趙寧夏永世不忘碑)는 1878년(고종 15) 3월 건립되었다.

[건립 경위]

나라가 혼랍스럽고 흉년까지 들어 민심이 동요하는 등 흉흉하던 시기에 강원도 김화군 일대 민정을 살피던 훈련대장 조영하와 강원도관찰사 민영위가 숙원이던 김화보를 건설해 주고 지역 주민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인근 김화읍 학포리, 사금학, 성주동 주민 일동이 조영하의 은덕을 추모하고자 1878년 김화읍 관아에 건립하였다.

[위치]

조영하 영세불망비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학사리서면 와수리 경계인 학포교 왼쪽으로 약 50m 떨어진 야산에 민영위 영세불망비와 함께 있다.

[형태]

조영하 영세불망비는 비의 머리 부분에 개석을 씌운 비좌개석(碑座蓋石) 형태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높이는 150㎝이고, 폭은 50㎝이다.

[금석문]

조영하 영세불망비의 앞면에는 ‘훈련대장 조공영하 영세불망비(訓鍊大將趙公寧夏永世不忘碑)’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무인삼월 주사 학포김학성주(戊寅三月主事鶴浦金鶴城柱)’라고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조영하 영세불망비는 훈련대장 조영하가 김화보를 막아 주는 등 김화 지역에서 선정에 베풀어 김화읍 주민들이 세웠다는 점에는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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