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498
한자 鐵原到彼岸寺鐵造毘盧遮那佛座像
영어공식명칭 Iron Vairocana Statue at Cheorwon Dopian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도피동길 23[관우리 423] 도피안사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김창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2년 12월 20일연표보기 -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국보 제63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국보 재지정
제작 시기/일시 865년연표보기 -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제작
현 소장처 도피안사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도피동길 23[관우리 423]지도보기
성격 불상
재질
크기(높이) 91㎝
문화재 지정번호 국보

[정의]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도피안사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 철제 불상.

[개설]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原到彼岸寺鐵造毘盧遮那佛座像)은 강원도 철원군 도피안사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 철제 불상이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6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철제의 좌상으로 광배가 없다. 불두와 몸체가 전반적으로 갸름한 형태이며 수인은 비로자나불의 특징인 지권인 즉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말아쥔 모양을 하고 있다. 상호에서 눈을 가늘게 처리하고 눈동자는 표현하지 않았다. 나발(螺髮)[소라모양의 머리카락]을 촘촘하고 섬세하게 조각한 반면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상투 모양의 살덩이]는 두드러지게 표현하지 않아 전면에서는 확인되지 않을 정도이다. 목 부분의 삼도도 두 줄만 확인된다. 법의는 통견(通肩)[양 어깨를 모두 법의로 덮은 양식]으로 상반신과 하반신을 두텁게 감싸 안았으며 옷주름을 평행선처럼 처리하여 사실성보다는 형식적이고 도식적으로 처리하였다. 대좌는 3단인데, 상단은 단판의 앙련을, 하단은 귀꽃이 달린 복련을 조각하였고, 중단은 8각의 형태이다.

[특징]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전체적으로 풍성한 양감보다는 세장한 형상을 띠고 있어 왕경이었던 경주의 8세기대 전형적인 불상이 풍만하고 안정된 형상을 띠고 있던 것과 대비된다. 상호를 보면, 젊고 강인한 모습이면서도 자비롭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띠고 있어 신라 말 철원 지역에서 성장한 지방 세력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고 보인다.

신라 중대 그리고 중앙에서 석불이 조성된 것과 달리 당시 지방에서는 철불이 유행하였다.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가슴 부분을 경계로 하여 윗쪽과 아래쪽을 주조한 다음 이어붙였으며 그 경계가 남아 있다. 불상의 등 쪽에는 명문이 양각되었는데, 판독문은 다음과 같다. “향도불명문병서 부석가불 회영귀진 천의월세 기세엄색 불경삼천광귀 일천팔백륙재이 개사괴사 조차금용 □□래철 인립원지 유원비성실 수계추자격 □□각장혼 환용비지 계진원 서이색막박□견 당천자함통륙년을유정월일 신라국한주북계철원군도피안사 성불지시 사□룡악견청 우시□멱거사 결연일천오백여인 견금석지 근불각로인(香徒佛銘文幷序 夫釋迦佛 晦影歸眞 遷儀越世 紀世掩色 不鏡三千光歸 一千八百六載耳 慨斯恠斯 彫此金容 □□來哲 因立願之 唯願卑姓室 遂棨椎自擊 □□覺長昏 換庸鄙志 契眞源 恕以色莫朴□見 唐天子咸通六年乙酉正月日 新羅國漢州北界鐵員郡到彼岸寺 成佛之時 士□龍岳堅淸 于時□覓居士 結緣一千五百餘人 堅金石志 勤不覺勞因).” 이를 통해서 당나라 연호로 함통 6년, 즉 신라 경문왕 5년(865)에 한주 북쪽에 있던 철원군에서 불교 신자 1,500여 명이 향도를 이루어 이 불상을 조성하였고 도피안사에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신라 말기에 지방 사회에서 철이라는 새로운 재료를 활용하여 만든 대표적인 불상으로 신라 중대와 달라진 불교문화의 양상을 보여 준다. 그리고 등 쪽의 명문을 통해 경문왕 대라는 불상의 조성 시기와 지방민으로 구성된 향도 조직이 조성하였다는 점, 철원 지방의 유력자와 주민들이 비로자나불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었으며, 그 조성을 통해 불교의 진리를 체득하고 신라 사회가 불법으로 다스려지기를 염원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불상 자체도 아름답지만 불교 미술의 특색과 신라 말, 고려 초의 사회 변동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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