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551
한자 安養寺址
영어공식명칭 Anyangsaji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율이리 215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홍승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863년연표보기 - 안양사 창건
폐지 시기/일시 1950년 추정 - 안양사 소실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 안양사지 국립문화재연구소 주관 군사 보호구역 내 문화유적 10개년 학술 지표조사 진행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6년 - 안양사지 불교문화재연구소 시굴 조사 진행
특기 사항 시기/일시 1398년연표보기 - 안양사 재건
소재지 안양사지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율이리 215 지도보기
성격 절터
지정 면적 15,020㎡

[정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율이리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 절터.

[개설]

안양사지(安養寺址)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율이리에 있는 절터로, 심원사(深源寺)와 함께 보개산(寶蓋山)을 대표하던 사찰 안양사(安養寺)가 있었던 곳이다. 안양사는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시대까지 수차례 중수(重修)를 거듭하였으나, 6·25전쟁 중 전각이 모두 불타면서 축대와 건물 터만 남게 되었다.

[변천]

안양사의 연혁이 상세히 기술된 『유점사본말사지(楡岾寺本末寺誌)』에 따르면, 안양사를 창건한 인물은 사굴산파(闍崛山派)의 개창자인 범일국사(梵日國師)이고, 창건 시기는 신라 경문왕(景文王) 3년인 863년으로 확인된다. 안양사는 1398년 무학왕사(無學王師)에 의해 중창되었으며, 광해군 시기 이름대사(頤凜大師)가 여러 칸의 건물을 짓고 상주하면서 대승암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884년 승려 엄성월(嚴性月)에 의해 절 전체에 대한 수리가 진행되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 『범우고(梵宇攷)』, 『관동읍지(關東邑誌)』 등의 자료에는 안양사가 보개산에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편, 안양사는 일제 강점기까지도 극락보전, 요사(寮舍), 칠성각, 산식각 등이 남아 있었다고 전하지만, 1950년 발발한 6·25전쟁으로 건물 전체가 소실되어 현재는 석축과 건물 터만 볼 수 있다.

[위치]

안양사지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율이리 215번지에 있다. 보개산 안에서도 외보개(外寶蓋)에 해당하는 철원·포천 방면의 산자락에서 터를 발견할 수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8년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군사 보호구역 내 문화유적 10개년 학술 지표조사’의 일환으로 안양사지 건물 터 및 유물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안양사지에는 요사·극락보전·노전(爐殿)의 터가 2단의 석축 위에 ‘ㄷ’자 형태로 남아 있고, 안양사지의 왼쪽으로 50m 가량 떨어진 곳에서 산신각 터를 발견할 수 있으며 건물 터 뒤편 돌단에는 많은 기와편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2016년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안양사지 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안양사지의 체계적인 보존·정비 및 관리를 위한 기초 학술 자료 확보를 목표로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건물 터의 용도와 특징을 구체화하고 다양한 문양의 전근대 기와편을 비롯하여 일제 강점기 백자편과 근대 기와편 등을 확인하였다.

[현황]

보개산에 1만 5020㎡의 안양사지가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안양사지는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에 걸쳐 강원도 일대에 확산되었던 선종(禪宗)의 성격과 교세를 이해할 수 있는 유적으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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