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640
한자 裵玄慶
영어공식명칭 Bae Hyunkyung
이칭/별칭 백옥삼(白玉衫),백옥삼(白玉三),무열(武烈)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홍승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918년 6월 15일 - 배현경 궁예 축출 후 왕건 옹립
활동 시기/일시 918년 8월 11일 - 배현경 개국1등공신 책록
활동 시기/일시 918년 9월 - 배현경 청주인 현율의 순군낭중 임명 저지
몰년 시기/일시 936년 12월 13일연표보기 - 배현경 사망
추모 시기/일시 994년 4월 23일[음력, 양력 994년 6월 4일] - 배현경 태조묘정 배향
추모 시기/일시 1027년 4월 12일[음력, 양력1027년 5월 20일] - 배현경 태조묘정 배향
출생지 경주 - 경상북도 경주시
거주|이주지 철원 - 강원도 철원군
거주|이주지 개성 -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사당|배향지 고려 태묘 -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사당|배향지 경덕사 -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성격 공신
성별
본관 경주
대표 관직 대광

[정의]

남북국 시대 태봉의 수도인 철원 지역에서 궁예를 축출하고 왕건을 옹립한 고려의 개국공신.

[가계]

배현경(裵玄慶)[?~936]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시호는 무열(武烈)이다. 초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백옥삼(白玉三), 『고려사(高麗史)』에 백옥삼(白玉衫)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왕조에 들어서서 배(裵)라는 성씨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아들은 배은우(裵殷祐)이며, 그 외의 가계에 대한 문헌은 확인되지 않는다.

[활동 사항]

배현경은 군졸 출신으로서 남다른 담력을 기반으로 전공을 쌓아 궁예(弓裔) 휘하에서 장군의 지위에 올랐다. 하지만 궁예가 황후와 태자까지 살해하는 등 공포정치를 일삼자 918년 6월 홍유(洪儒)·신숭겸(申崇謙)·복지겸(卜智謙)과 모의하여 왕건을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였다. 왕건은 즉위 후 국호를 고려로 고치고 배현경을 비롯한 네 장군의 공훈을 표창하여 개국1등공신으로 삼았다.

고려 건국 이후 배현경왕건 휘하에서 마군장군을 역임하였으며, 왕건의 후삼국 통일 전쟁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움으로써 대광의 지위까지 올랐다. 918년 9월 마군장군을 역임할 당시 배현경왕건이 청주 사람 현율(玄律)을 순군낭중에 임명하자 같은 청주 사람이었던 임춘길(林春吉)이 순군의 관리로 재직하며 반역을 도모하였던 선례를 지적하고 왕건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이보다 앞서 청주가 고려로부터 이반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어 홍유 등이 왕건의 명에 따라 무력으로 청주인들을 제어한 사건도 있었기 때문에 왕건배현경의 제안을 수용하여 현율을 병부낭중에 임명하였다.

배현경은 후삼국 통일이 이루어진 936년 12월에 지병이 악화되어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왕건이 병문안을 왔다가 대문을 나서자마자 배현경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왕건은 소식을 접한 뒤 어가를 멈추고는 관청에 지시하여 재물을 내어 장례를 주관하게 하였다.

[상훈과 추모]

배현경은 사망한 뒤 무열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994년(성종 13) 홍유·복지겸·신숭겸·유금필과 함께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1027년 현종이 선왕과 선후의 존호를 올리고 태묘를 정비하였을 때에도 배현경은 기존의 네 장군 및 최응(崔凝)과 함께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1052년에 문종은 배현경 등 6공신의 자손들에게 초직(初職)을 제수하거나 현재의 자급(資級)을 승급시키라는 명을 내리기도 하였다.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에는 배현경을 추모하기 위하여 경주배씨 문중이 1995년에 설립한 경덕사(景德祠)가 있으며, 일 년에 두 차례 추모제를 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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