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701
한자 尹浩炳
영어공식명칭 Yoon Hobyu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엄찬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6년연표보기 - 윤호병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2일 - 윤호병 갈말읍 3·1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6월 28일 - 윤호병 경성복심법원에서 태 90도 확정
추모 시기/일시 2010년연표보기 - 윤호병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 수훈
출생지 동막리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동막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동막리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동막리 지도보기
활동지 갈말면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윤호병(尹浩炳)[1876~?]은 1876년 지금의 철원군 갈말읍 동막리에서 태어났다. 갈말면[현 갈말읍]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1일 문혜리 서당 훈장이던 신성규(申聖奎)와 당시 보성전문학교 학생 김칠룡(金七龍)의 주도로 추진되었다. 신성규와 김칠룡이 연락을 취하자 문혜리김상보(金相保)·전사진(全士進)·김학길(金學吉)·이경삼(李敬三)·김경복(金敬福), 내대리의 임낙호(任洛鎬), 토성리의 황철성(黃徹性) 등과 함께 동막리에 살고 있던 윤호병도 적극 동조하였다.

1919년 3월 12일 청양리 헌병 주재소 앞에 모인 윤호병을 비롯한 800여 명의 시위 군중은 태극기를 높이 세우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던 윤호병은 임낙호와 함께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1919년 6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태(笞) 90도가 확정되었다.

윤호병이 검거된 후에도 시위대는 오후 1시경 태극기를 휘두르며 행진하여 문혜리에서 주민들과 합세한 후 면사무소로 가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면사무소 직원들은 모두 도망쳤고 어두워지자 숨어 있던 면장 황희수가 나타나 군중 앞에서 만세를 외쳤다. 시위 군중은 밤이 깊어도 돌아갈 줄 모르고 쌓였던 울분을 터뜨려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면장의 권유로 해산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0년 대한민국 정부는 윤호병의 공적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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