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705
한자 崔在明
영어공식명칭 Choi Jaemyeong
이칭/별칭 태원(泰元)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엄찬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9년 11월 25일연표보기 - 최재명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8일 - 최재명 내문면 3·1운동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52년 05월 15일연표보기 - 최재명 사망
출생지 내문면 독검리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독검리 지도보기
활동지 내문면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최재명(崔在明)[1889~1952]의 본관은 개성(開城)이고, 자는 태원(泰元)이다. 아버지는 최병국(崔炳國)이고, 동생은 최재청(崔在淸)이다.

[활동 사항]

최재명은 1889년 11월 25일 철원군 내문면 독검리[현 철원읍 독검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내문면 출신 천도교 교훈 최병훈(崔炳勳)철원읍에서 3·1운동을 주도하자 내문면에도 독립 만세 운동의 기운이 팽배하였다. 최재명은 천도교인 이주붕(李周鵬)·박용득(朴龍得)·윤태병(尹泰炳)·강기준(姜祺俊), 동생 최재청 등과 함께 내문면 독검리 구장 윤선삼(尹先三)을 앞세워서 마을 주민들에게 통문을 돌렸고, 오동리의 윤상만(尹相萬)과 마방리의 서당 훈장 이홍달(李鴻達)에게도 통문을 보내 내문면 전체의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8일 최재명이주붕 등과 합세한 뒤 새벽부터 주민들을 이끌고 북창리에 있던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독검리 주민들은 시위행진을 하면서 오동리를 비롯하여 원운리·반석리·내문리·마방리 등의 주민들을 대열에 합류시켰다. 오후 1시경 시위 군중 700여 명은 북창리에 도착하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에 태극기를 게양하였고, 도망간 면장을 대신하여 면서기 최병건(崔炳健)에게 독립 만세를 외치도록 하였다. 얼마 뒤 석교리 헌병 파견대에서 출동한 일본 헌병대가 해산 명령을 내렸으나 최재명 등 시위 군중은 응하지 않고 시위를 이어 가다가 헌병대가 총을 쏘며 강제 진압을 시도하자 해산하였다.

일본 경찰이 시위 주동 인물을 체포하려고 혈안이 되자 최재명은 아버지의 권유로 원산의 매제 천규철(千奎哲)의 집으로 피신하여 원산의 독립군과 손을 잡고 활동하였다. 수십 회에 걸친 독립운동 자금 조달로 가세(家勢)는 기울었고, 최재명의 아버지는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최재명은 6·25전쟁 때 남쪽으로 피난하다가 인민군에게 붙잡혀 1952년 5월 15일 총살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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