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910
한자 祠宇
영어공식명칭 Seowon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학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50년 - 충렬사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65년 - 포충사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18년 - 구은사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09년 - 모성사 건립
포충사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 지도보기
충렬사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 지도보기
충장사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지도보기
구은사 -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 지도보기
모성사 - 강원도 철원군 어운면
산앙재영당 - 강원도 평강군

[정의]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선조(先祖) 혹은 선현의 신주(神主)나 영정(影幀)을 모셔 두고 제향을 행하는 장소.

[개설]

사우(祠宇)는 선조(先祖) 혹은 선현의 신주(神主)나 영정(影幀)을 모셔 두고 제향을 행하는 장소로, 조선 시대 정착된 유교 이념 및 의례 체계의 상징물이다. 고려 말 이후 유교문화가 확산함에 따라 선현에 대한 봉사 기능을 수행하던 사묘(祠廟)가 광범위하게 건립되었으며, 조선 시대 유교 이념이 정착하면서 서원과 더불어 건립이 더욱 확산되었다. 한편, 봉사와 강학을 함께 하는 서원이 세워진 것은 1543년(중종 38) 주세붕의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 최초이다.

사우는 서원과 더불어 향촌사회에서 사림의 중심이 되었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정치적 변동과 사회 변화 속에서 여러 가지 폐단을 일으켰다. 흥선대원군은 1870년 전국에 47개소의 서원 및 사우만 존속시키고 나머지를 훼철하였다.

[강원도 철원군, 김화군, 평강군 일원 사우]

강원도 철원군에 편입된 철원군, 김화군, 평강군 지역에는 조선 시대 6개 사우가 세워졌다.

김응하(金應河)를 모신 포충사(褒忠祠), 홍명구(洪命耈)유림(柳琳)을 모신 충렬사(忠烈祠), 김시습(金時習) 등을 모신 구은사(九隱祠), 원호(元豪)를 모신 충장사(忠壯祠), 공자 등을 모신 모성사(慕聖祠), 오윤겸(吳允謙)과 이희조(李喜朝)를 모신 산앙재영당(山仰齋影堂)이 조선 시대에 세워졌다. 1650년 충렬사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에 건립되었고 1665년 포충사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에 건립되었다. 충장사는 건립 연도 미상으로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에 건립되었으며, 1818년 구은사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에 건립되었다. 1809년 모성사가 강원도 철원군 어운면에 건립되었고 산앙재영당은 건립 연도 미상으로 강원도 평강군에 건립되었다.

이 가운데 포충사충렬사는 임금이 현판을 지어 내린 사액을 받은 사우였다. 흥선대원군이 1868년과 1870년 두 차례에 걸쳐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 강원도에서는 단 세 군데의 사우만이 남았는데, 포충사충렬사가 영월에 있는 창절사(彰節祠)와 함께 남은 사우이다.

[현황]

충장사와 모성사, 산앙재영당은 6·25전쟁 때 불에 탄 것으로 확인되어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포충사충렬사, 구은사 역시 6·25전쟁 당시 전소되었으나 모두 복원하여 현재 사우가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철원군의 포충사충렬사는 철폐령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의 3곳 중 2곳으로 남은 사액 사우이다. 철원군에 있는 사우는 현재에도 매년 제향을 지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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