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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 의원 보궐 재선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561
한자 制憲議員補闕再選擧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병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949년 6월 10일 - 제헌 의원 이병국 사망으로 치러진 보궐 선거에서 김용화 당선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9년 7월 23일 - 김용화를 당선무효처리하고 치러진 제헌 의원 보궐 재선거에서 이상돈 당선
종결 시기/일시 1950년 5월 30일 - 제2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김용화 당선
성격 정치 사건
관련 인물/단체 이병국|김용화|이상돈

[정의]

1949년 7월 23일에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실시된 제헌 의원 보궐 선거.

[역사적 배경]

해방 이후 한동안은 좌우익 간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달았던 시기였다. 제헌 국회 의원 선거는 신탁 통치 찬반을 두고 좌우익이 첨예하게 맞서는 극심한 이념 대립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치러졌기에, 집권 세력에 의하여 억울하게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는 사례가 많았다.

[경과]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제헌 의원 선거에서 충청남도 천안군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 이병국(李炳國)이 당선 한 달여 만에 사망함에 따라 1949년 6월 10일 보궐 선거를 실시하여 무소속의 김용화(金鏞化)가 당선되었다. 당시 집권 세력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낙선하고 못마땅한 후보가 당선된 것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결국 김용화의 연설 내용 중 “민주주의는 비빔밥과 같다.”라는 말을 문제 삼아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어 구속하고 의원 자격을 박탈하였다. 요컨대 ‘비빔밥은 고추장으로 비빈다. 비빔밥은 빨개진다. 그러므로 빨갱이다.’라는 논리였다. 김용화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1949년 7월 23일 보궐 재선거에서 민주 국민당의 이상돈(李相敦)이 당선되었다.

[결과]

집권 세력의 정치 압력에 의해 ‘빨갱이’로 몰려 당선 무효 처리가 된 김용화는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벗고 대한국민당으로 출마하여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되어 명예를 회복하였다.

[의의와 평가]

제헌 의원 보궐 재선거는 해방 후 좌우익이 벌이는 극한적인 대립을 잘 보여준다. 이 가운데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었던 보궐 선거 당선자 김용화는 1950년 제2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압도적 차이로 당선됨으로써 유권자가 집권 세력의 오만을 심판하는 결과를 낳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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