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7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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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강종원 |
묘소|단소 | 전씨 시조 단소 및 재실 - 충청남도 천안시 풍세면 삼태리 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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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배향지 | 양현사 - 충청남도 천안시 풍세면 삼태리 219 |
성격 | 백제 개국공신 |
성별 | 남 |
본관 | 천안 |
[정의]
삼국 시대 백제 개국공신으로 정선 전씨, 천안 전씨를 비롯한 우리나라 전씨의 도시조(都始祖).
[활동 사항]
전섭(全攝)은 기원전 18년경에 활동했던 인물로, 온조왕이 백제를 건국할 때 그를 보좌하였던 10명의 개국공신 가운데 한 명으로 전한다. 이후 전섭은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져 천안시 풍세면 지역에 거주하였다고 하며, 천안 전씨를 비롯한 우리나라 전씨의 도시조(都始祖)가 되었다. 후손인 전호익(全虎翼)은 백제의 병권을 관장한 병상(兵相)이었고, 전호익의 후손 전종도(全宗道)는 신라 시대 승상이었다는 기록이 『영성지』에 있다.
우리나라 전씨의 본관은 정선(旌善)을 대종으로 하고, 천안, 용궁, 경주 등 18본으로 분적되었다. 그 중 하나인 천안 전씨(天安全氏)는 도시조 전섭(全聶)의 16세손인 전낙(全樂)을 중시조로 시작되었다. 그는 고려 개국 공신이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싸울 때 신숭겸과 함께 순절하였다. 그 후 삼사(三司) 좌복야(左僕射)에 추증되었고, 천안부원군(天安府院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천안을 본관으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후손으로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숭경부승과 감찰대부 진현관대제학 상호군, 동지밀직사사 상의 회의도감사를 지낸 전신(全信)[1276~1339]이 있다.
[묘소]
원래 전섭의 묘는 없어졌는데 조선 시대에 후손들이 전씨 시조 단소(全氏始祖壇所) 및 재실(齋室)을 건립하여 향사해 왔으며, 1976년 중건하였다. 총면적 1만 9834㎡의 전씨 시조 단소 및 재실은 1987년 12월 30일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97호로 지정되었으며, 묘소 2기와 재실 2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실은 묘단 앞에 있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둥근 기둥과 4각 기둥을 혼용하였고 주위는 담장을 둘렀으며, 출입문은 솟을대문이다. 재실 오른쪽에 수묘사를 지었고, 출입구는 삼문으로 하였다. 묘 앞에 상석·양석(羊石)·문석인·망주석(望柱石)을, 왼쪽에는 장명등(長明燈)을, 오른쪽에는 비를 세웠다.
[상훈과 추모]
전씨 시조 단소의 오른쪽에 양현사(兩賢祠)가 있는데, 전섭과 후손인 전신, 부인이 천안 전씨였던 남악(南嶽) 이협(李莢)[1584~1665]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동(里門洞)에도 전섭을 향사한 제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