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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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應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경수 |
[정의]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문신·의병.
[가계]
본관은 강릉(江陵). 증조할아버지는 군기시 판관(軍器寺判官)을 지낸 김유악(金由岳)이고, 할아버지는 사재감 정(司宰監正)을 지낸 김혼(金渾), 아버지는 사직서 영(社稷署令)을 지낸 김광렬(金光烈)이다. 어머니는 용인 현령(龍仁縣令)을 지낸 성효원(成孝元)의 딸이다. 아들은 김찬종(金纘宗)이다.
[활동 사항]
김응명(金應命)[1567~1625]은 감역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족들과 피난하던 중 양주에서 왜적과 맞닥뜨렸다. 늙은 부모를 모시고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 형인 김철명(金哲命)과 김순명(金順命)이 팔을 벌려 앞을 가로막았다. 왜적들은 아버지와 형 김철명을 비롯한 많은 가족을 살해하였고, 어머니 성씨(成氏)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행히 김순명과 김응명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심한 부상을 입고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다고 한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김응명은 당시 전라도 도사(全羅道都事)로 있던 형 김순명과 함께 수천 명의 병력을 모아 남원성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성이 함락된 후라 대성통곡을 하고 돌아왔다. 이후 고창 현감, 제용감 판관을 역임하였다.
[묘소]
천안시 목천읍 화청동에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