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927 |
---|---|
한자 | 牧山 趙炫郁先生 殉國 紀念碑 |
이칭/별칭 | 3·1운동,조현욱,노곡동,만세운동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로3길 23-1[노곡동 산78-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삼조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854년 - 조현욱 출생 |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922년 - 조현욱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968년 6월 1일 - 목산 조현욱선생 순국 기념비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1년 - 조현욱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현 소재지 | 목산 조현욱선생 순국 기념비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로3길 23-1[노곡동 산78-1] |
원소재지 | 목산 조현욱선생 순국 기념비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로3길 23-1[노곡동 산78-1] |
성격 | 기념비 |
관련 인물 | 조현욱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3m[높이] |
관리자 | 조근채 |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있는 독립운동가 조현욱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
[개설]
목산 조현욱선생 순국 기념비(牧山趙炫郁先生殉國紀念碑)는 독립운동가 조현욱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 6월 1일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 세운 기념비이다. 조현욱(趙炫郁)[1854~1922]은 1919년 3월 26일 청송군 현서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조현욱은 인근 마을 신태휴·조병국 등에게 격문을 보내 만세 시위에 동참하기를 권유하였다. 또한 비밀리에 태극기를 제작하고 주민들을 규합하여 만세운동을 펼쳤다. 만세운동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31일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순국하였다.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목산 조현욱선생 순국 기념비는 2003년 9월 22일 국가보훈처에 의하여 독립운동 현충 시설로 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조현욱선생기념사업회는 1968년 6월 1일 조현욱의 공적을 추모하고 애국정신을 기리고 민족정기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목산 조현욱선생 순국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목산 조현욱선생 순국 기념비는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산78-1번지 야산 중턱 조현욱 선생 묘 바로 아래에 있다.
[형태]
목산 조현욱선생 순국 기념비는 신도비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재질은 석재이며 높이는 3m이다.
[금석문]
목산 조현욱선생 순국 기념비 앞면에는 한자로 ‘목산 조현욱선생 순국 기념비(牧山趙炫郁先生殉國紀念碑)’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목산 조현욱선생 순국 기념비는 2003년 9월 22일 국가보훈처에 의하여 독립운동 현충 시설로 지정받았다. 매년 3월 조현욱선생유족회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목산 조현욱선생 순국 기념비는 일제강점기 대구 및 경북 지역의 3·1운동의 특성과 조현욱의 애국정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