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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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靜觀亭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로3길 83[서변동 95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구본욱 |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이병철을 추모하는 정자.
[개설]
정관정(靜觀亭)은 묵재(默齋) 이병철(李柄喆)[1874~1914]을 추모하여 이병철이 살던 곳에 건립한 정자이다. 이병철의 자는 희언(希彦)이고 호는 묵재(默齋),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조선 후기 애국지사인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6~1905]과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1839~1912]의 문인이다.
이병철은 심석재에게 『중용(中庸)』을 배우고 성리(性理)의 설을 얻어들었다. 심석재는 1912년에 「묵재기(默齋記)」를 지어 주며 면려하였다. 「묵재기」에서 말하기를 “설문청(薛文淸)이 일찍이 말하기를 만언(萬言)이 묵(黙) 자(字) 한 글자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내가 의심하기를 사람의 어묵(語默)은 마땅히 말을 해야 할 때에는 말을 해야 하고, 침묵해야 할 때에는 침묵해야 한다. 침묵해야 할 때 말하고, 말해야 할 때 침묵하면 가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마땅하고 마땅하지 않음을 분별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석씨(釋氏)와 같다고 하고 설문청의 말은 옳지 않고 공자와 같이 때에 맞게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송병선이 1905년 을사조약을 성토하다가 구금되었는데, 이병철은 탁와(琢窩) 정기연(鄭璣淵), 택와(擇窩) 우하철(禹夏轍), 치재(癡齋) 서한기(徐翰基), 긍재(兢齋) 이병운(李柄運), 중재(重齋) 윤봉주(尹奉周) 등과 더불어 상경하여 부당성을 상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또 향리의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1825~1905]와 경재(景齋) 우성규(禹成圭)[1830~1905]의 강학에 참여하여 공부하였다. 이병철은 몸이 약하여 41세로 일찍 타계하였다.
[위치]
정관정은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951에 있다.
[변천]
정관정은 1972년에 후손들이 추모하여 건립하였다.
[형태]
정관정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목조 기와집이다.
[현황]
정관정은 관리 상태가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정관정은 선조를 추모하여 현대에 들어 건립한 정자이며, 제호(題號)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성리학(性理學)을 깊이 연구한 묵재 이병철의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