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셀룰로이드공업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3635
한자 東洋-工業社
영어공식명칭 Dongyang Celluloid Corp.
이칭/별칭 동양셀룰로이드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1가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노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53년연표보기 - 동양셀룰로이드공업사 설립
최초 설립지 동양셀룰로이드공업사 -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 지도보기
성격 안경테 제조업
설립자 노병진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 있었던 안경테 제조업체.

[변천]

동양셀룰로이드공업사는 1953년 대구광역시 북구 북성로 입구에서 안경원을 운영하던 노병진이 칠성동에 설립한 안경테 제조회사이다.

당시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에 근무하다 독립한 노종옥, 김국진의 기술과 관세청에 근무하던 유모의 자금이 힘을 합친 결과였다. 동양셀룰로이드의 등장으로 1950년대는 합성수지를 중심으로 한 안경테 생산이 전성기를 이루었다.

1960년대 접어들면서 국산 안경테 디자인과 소재에 큰 변화가 생겼다. 세계적인 추세가 합성수지에서 금속제로 변하면서 동양셀룰로이드공업사도 생산 라인 일부를 금속제로 전환하였다. 1966년 6월 동양셀룰로이드공업사는 상공부에서 중소기업 경영 합리화의 일환으로 실시하던 수출 중소기업 시범 공장에 선정되었다.

1967년 7월부터 시행된 무역자유화 정책 품목에 셀룰로이드 안경테가 포함되면서 안경업계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1969년에는 동양셀룰로이드공업사 설립 멤버인 노종옥과 김국진이 독립하여 대왕셀룰로이드를 설립하였다. 또한 1974년에는 코도광학 이태하 대표가 동양셀룰로이드공업사에서 에폭시 안경테를 개발한 노병태를 영입하여 대구광학을 설립하면서 마찰을 빚는 일도 있었다.

동양셀룰로이드공업사는 1970년 11월 말 수출 실적 7만 5353달러를 달성하였으며, 1975년 10월 스위스에 수정시계 유리 약 1500달러를 수출하였다는 『동아일보』 기사를 마지막으로 언론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1980년대 말, 결국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셀룰로이드공업사가 문을 닫은 이유는 자금난, 안경테보다 공정이 수월한 렌즈 생산을 선택한 전략적 실수 때문이라고 한다.

동양셀룰로이드공업사는 비록 문을 닫았지만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와 함께 대구 안경 산업의 사관학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삼원산업사의 곽순호 사장과 화성산업사의 박영화 대표가 동양셀룰로이드 출신이다. 또한 유진광학의 송준용 회장은 동양셀룰로이드 출신인 친구 권영수 전무의 지원을 받아 1976년 유진광학을 설립하였다. 1세대의 인맥과 가르침을 바탕으로 대구 안경업계는 2세대 기업인들에게 이어져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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