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3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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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書堂塵穢 晨起鋤箒 吟示諸學者 |
영어공식명칭 | To get up early in the morning to clean up the dust in the study hall and recite for various students |
이칭/별칭 | 서당에 낀 먼지를 새벽에 일어나 청소하고 여러 학생들에게 읊어 주다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북구|달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영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53년 - 손처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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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34년 - 손처눌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784년 - 「서당진예 신기서추 음시제학자」 저자 손처눌의 『모당집』 간행 |
배경 지역 | 연경서원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동구 지묘동 |
배경 지역 | 선사재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
배경 지역 | 청호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250-11[황금동 산79-4] |
성격 | 한시|칠언절구 |
작가 | 손처눌 |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서 강학 활동을 하던 손처눌이 서원에서 소회를 읊은 한시.
[개설]
「서당진예 신기서추 음시제학자(書堂塵穢 晨起鋤箒 吟示諸學者)」를 쓴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본관이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 서사원(徐思遠), 곽재겸(郭再謙), 유요신(柳堯臣)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대구 지역 인사들과 공산의진군(公山義陣軍)을 조직하여 왜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서사원과 함께 대구 지역의 강학 활동에 힘써 대구 문풍(文風)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연경서원, 선사재 등에서 강학하였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청호서원(靑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1784년 간행된 『모당집(慕堂集)』이 있다.
[구성]
「서당진예 신기서추 음시제학자」는 칠언절구 세 수(首)로 이루어져 있다. ‘서당에 낀 먼지를 새벽에 일어나 청소하고 여러 학생들에게 읊어 주다’라는 의미이다.
[내용]
「서당진예 신기서추 음시제학자」는 서원에서 공부하는 학도들에게 바라는 당부가 담긴 시이다. 세 수 중 첫 번째 수를 살펴보자.
쇄소정당수집역(灑掃庭堂誰執役)[뜰과 마루 쓸고 닦음은 누구의 직분인가]
소지사장직의공(少之事長職宜供)[어른 섬김은 젊은이가 응당 하여야 할 일]
여하소자불수직(如何小子不修職)[어찌 그대들은 맡은 직분을 닦지도 않고]
적루진애개몰흉(積累塵埃慨沒胷)[먼지 가득 쌓여 가슴 덮음이 개탄스럽네]
첫 번째 수 다음에 이어지는 두 수의 시들도 각 절구의 결구를 이어서 내용이 연결되고 있다. 사소하게 생각하는 쇄소응대(灑掃應對)가 천금보다 더 중함을 학도들에게 알려 주고 있다.
[특징]
「서당진예 신기서추 음시제학자」의 첫 번째 수는 동(冬) 계열의 운목이 사용된 칠언절구다. 칠언절구 세 수로 이루어져 있으나, 하나의 내용으로 이어지는 한 편의 시와 같다.
[의의와 평가]
「서당진예 신기서추 음시제학자」는 손처눌이 학도들에게 바라는 당부와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말하는 시이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황폐하여진 국토 위에 다시 학문을 꽃피우기 위하여 손처눌은 대구 지역에서 서사원과 함께 강학 활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서당진예 신기서추 음시제학자」는 대구의 문풍(文風)을 진작시키기 위한 손처눌의 마음과 노력이 깃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