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서강중형제영친귀대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628
한자 送徐剛中兄弟榮親歸大丘
영어공식명칭 A Poem Written For Seo-Geojung Brothers Going Back To Daegu
이칭/별칭 「어버이를 영화롭게 하려고 대구로 돌아가는 서거정 형제를 보내며」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곽명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412년 - 「송서강중형제영친귀대구」 저자 하위지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456년 - 「송서강중형제영친귀대구」 저자 하위지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478년 - 『동문선』 간행
배경 지역 구암서원 -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17길 20[산격동 산79-1]지도보기
성격 한시|칠언율시
작가 하위지

[정의]

조선 전기 문신 서거정이 부모 봉양을 위하여 대구로 떠날 때 하위지가 지어 준 한시.

[개설]

「송서강중형제영친귀대구(送徐剛中兄弟榮親歸大丘)」서거정이 부모 봉양을 위하여 대구로 떠날 때 하위지가 서거정 형제를 위하여 지어 준 한시이다. 저자 하위지(河緯地)[1412~1456]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천장(天章)·중장(仲章)이며, 호는 단계(丹溪)·연풍(延風)이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조선 전기 문신이며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이다. 경상도 선산읍[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던 옛 지명]에 있는 월암서원(月巖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는 강중(剛中)·자원(子元)이며, 호는 사가정(四佳亭) 혹은 정정정(亭亭亭)이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아버지는 서미성(徐彌性)이고, 어머니는 권근(權近)의 딸이다. 1444년(세종 26)에 문과에 합격한 이후로 집현전박사, 집현전응교, 홍문관대제학, 세자이사(世子貳師) 등을 거치면서 조선 전기의 문병(文柄)을 장악하였다. 국가의 편찬 사업을 주도하여 『동국통감(東國通鑑)』·『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동문선(東文選)』·『경국대전(經國大典)』 등을 공동 편찬하였다. 저서로 『사가집(四佳集)』이 있다. 대구광역시 구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서거광(徐居廣)[?~1459]은 서거정의 형이다. 무과에 급제한 후 세종 때 언양현감(彦陽縣監)을 지냈다.

「송서강중형제영친귀대구」의 이칭은 「어버이를 영화롭게 하려고 대구로 돌아가는 서거정 형제를 보내며」이다.

[구성]

「송서강중형제영친귀대구」는 칠언율시(七言律詩)이다.

[내용]

일가문무성명향(一家文武姓名香)[한 가문에서 문무로 꽃다운 이름 드날려]

형집금오제옥당(兄執金吾弟玉堂)[형은 집금오에 아우는 옥당에 들었네]

학발북당응효양(鶴髮北堂膺孝養)[나이 드신 모친 진심 어린 효로 봉양하니]

금의남국이휘광(錦衣南國已輝光)[남국에 비단 옷 이미 빛나 찬란하구나]

영원선후군감선(鴒原先後君堪羨)[할미새 들판에서 앞뒤하니 그대 너무 부럽고]

형수참차아독상(荊樹參差我獨傷)[박태기나무 갈라지듯 나 홀로 아파하네]

회수월파정하로(回首月波亭下路)[고개 돌려 떠올려 보니 월파정 아래 길에는]

만산송백울창창(滿山松栢欝蒼蒼)[온 산 가득 송백 울울창창하리니]

[특징]

「송서강중형제영친귀대구」는 ‘양(陽)’ 계열의 운자가 사용된 칠언율시이다.

[의의와 평가]

「송서강중형제영친귀대구」는 조선 전기 시작(詩作)에 있어서 관료의 호화로운 수식과 용사(用事) 활용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는 작품이다. 형제간의 우애를 뜻하는 용사의 활용이 돋보인다. 『시경』「상체(常棣)」와 『속제해기(續齊諧記)』「자형수(紫荊樹)」에서 차용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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