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6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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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謁硏經書院 用退溪先生畵巖韻 |
영어공식명칭 | A poem ‘Hwa-arm’ written by visiting Yeongyeong Confucian Academy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곽명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11년 - 채영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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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636년 - 「알연경서원 용퇴계선생화암운」 창작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49년 - 채영걸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997년 - 「알연경서원 용퇴계선생화암운」 저자 채영걸의 『시산양매당집』 간행 |
배경 지역 | 화암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
성격 | 한시|칠언절구 |
작가 | 채영걸 |
[정의]
1636년 대구 지역의 연경서원을 채영걸이 방문하고 이황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개설]
「알연경서원 용퇴계선생화암운(謁硏經書院 用退溪先生畵巖韻)」를 쓴 채영걸(蔡瀛傑)[1611~1649]은 본관이 인천(仁川)이고, 자는 백등(伯登)이며, 호는 시산(是山)이다. 아버지는 채무(蔡楙), 어머니는 안동김씨 김경건(金慶建)의 딸이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1632년(인조 10) 팔공산을 유람하면서 연경서원을 참배하고 『심경』, 『근사록』을 강론하였다. 채영걸이 연경서원에서 지은 시는 3수가 전한다. 저서로 『시산유집(是山遺集)』이 전하는데, 『시산양매당집(是山養梅堂集)』에 수록되어 있다. 『시산양매당집』은 채영걸의 『시산유집』 필사본과 채치룡(蔡致龍)의 『양매당유집(養梅堂遺集)』 필사본의 합본이다.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으로, 이황·정구(鄭逑)[1543~1620]·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昌)[1532~1585]과 이숙량(李淑樑)[1519~1592]을 제향하였던 서원이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연경서원의 터는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과 북구 연경동 사이에 있다.
「알연경서원 용퇴계선생화암운」은 채영걸이 연경서원을 방문하고 1636년 이황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이다.
[구성]
「알연경서원 용퇴계선생화암운」은 칠언절구이다.
[내용]
성대청아시원성(聖代菁莪是院成)[성세의 인재들이 이 서원을 이루었으니]
사림조두게연경(士林俎豆揭硏經)[연경이라 편액 하고 사림들 제향드리네]
연전오조잉진소(年前吾祖仍陳疏)[지난해 우리 조부께서 올리신 청액소로]
윤허여금배환성(允許如今倍喚醒)[윤허하시면 지금보다 깨우침 배가 되리라]
[특징]
「알연경서원 용퇴계선생화암운」은 이황의 「화암서원(畵巖書院)」에 사용된 청(青) 계열의 운목을 사용하여 지은 칠언절구이다.
[의의와 평가]
「알연경서원 용퇴계선생화암운」에는 채영걸의 조부인 채몽연(蔡夢硯)의 사액소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어 작품의 창작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시의 기구(起句)와 승구(承句)를 통하여 임진왜란 후 소실된 서원을 중건하여 인재 육성과 제향의 기능을 회복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