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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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風寒碧樓 |
영어음역 | Cheongpung Hanbyeongnu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권순긍 |
[정의]
조선 시대 「청풍 한벽루(淸風 寒碧樓)」라는 제목으로 노래한 35편의 한시.
[개설]
청풍 한벽루는 청풍 관아에 딸린 누각이다. 하지만 이산해(李山海)[1538~1609]의 시에서 “아름다운 경치는 호서 제일이라[形勝湖西第一洲]”고 언급했듯이 호서 제일의 누각으로 수많은 사대부들에 의해 시적 소재로 활용되었다. 특히 남한강 변의 풍광이 빼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수많은 시인들이 시로 형상화하여 「청풍 한벽루」라는 제목의 한시가 35편에 달한다.
[구성 및 특징]
이승소(李承召)는 시에서 절벽과 산과 강이 어우러져 기막힌 경치를 만들고 있다고 노래한다. 더욱이 산이 좋아 진나라 사령운(謝靈運)처럼 나무 신을 만들게 하여 산을 오르고 싶고, 창랑(滄浪)의 물과 같은 맑은 강물엔 갓끈을 씻고 싶다고 노래했다. 여기가 무릉도원인 것이다. 무릉도원도 곧 인간세상이니 삶을 여기서 보내리라 작정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벼슬에 매인 몸이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 아름다운 풍광을 마음껏 즐길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인 김정(金淨)[1486~1520]과 박순(朴淳)[1523~1589]의 시를 보면, 모두 어떻게 하면 혼탁한 벼슬살이에서 벗어나 마음껏 강호를 떠돌아다닐까를 희구하고 있다. 청풍 한벽루에 올라 주변의 풍광을 보니 그런 마음이 더욱 간절했으리라. 그래서 앉아서 강물 소리 들으며 다락을 내려가지 않고 높이 누어 창주에 붙어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김정의 시를 차운하여 쓴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한벽루차충암운(寒碧樓次沖庵韻)」에서는 더욱 그윽하고 신선 세계에 가까운 정경을 그리고 있다. 평생 산림처사로 살았던 권상하에게 자연은 유유자적하는 삶의 공간이다. 그래서 자연이 때로는 현실을 떠난 선경(仙景)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색 구름이 끼고, 학이 돌아오고, 젓대 소리는 들리는, 말 그대로 신선 세계의 정경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내용]
다음은 김정이 청풍 한벽루에 대하여 읊은 오언 고시이다.
반피산천장(盤避山川壯)[이리저리 방황해도 산천은 장한데]
건곤자경유(乾坤玆境幽)[하늘과 땅 이에 경계가 깊구나]
풍생만고혈(風生萬古穴)[바람은 만고의 혈(穴)에서 나오고]
강감오갱루(江憾五更樓)[강물은 깊은 밤 누대에서 한탄케 하네]
허침부청하(虛枕負淸夏)[빈 베개는 맑은 여름이 마땅하고]
시혼상구추(詩魂爽九秋)[시혼(詩魂)은 구추(九秋)에 상쾌하도다]
하인탈신루(何因脫身累)[어찌하면 몸의 매임 벗어나]
고와기창주(高臥寄滄州)[높이 누워 창주(滄州)에 붙여 살거나]
산협청강난(山峽淸江亂)[산협엔 맑은 강물 이리저리]
풍연공세여(風烟空世餘)[바람 연기는 빈 세상에 남았네]
현애승사약(懸崖僧寺約)[벼랑에 걸린 절간 단촐하고]
소수금인거(疎樹禁人居)[성긴 나무 사람 살기를 금하네]
야경담한벽(夜鏡湛寒碧)[밤 거울은 맑아 차고 푸르며]
유현응원허(流絃凝遠虛)[흐르는 거문고 소리 멀리 허공에 엉기네]
진철여가탁(塵綴如可濯)[세상 티끌 묻었어도 씻어 내고]
상축무릉어(相逐武陵漁)[서로 쫓아서 무릉(武陵)의 고기를 낚을 만하네]
추진산거정(秋盡山居靜)[가을이 다하니 산중 생활 고요하고]
한운담군루(閑雲淡郡樓)[한가운 구름 고을 누대 위에 옅게 떠 있네]
평사대수색(平沙帶樹色)[편편한 모래펄 나무색을 띠고]
공협향강류(空峽響江流)[빈 산협엔 강물 흘러 울리네]
여탁창주원(與托滄州遠)[더불고 기탁할 창주는 멀고]
정적총계유(情笛叢桂幽)[피리에 정을 실으니 총총한 계수나무 그윽도 하네]
부운금출동(浮雲今出洞)[떠 있는 구름 지금 골짝에서 나오고]
어골자유유(魚骨自悠悠)[어골(魚骨)은 스스로 유유하기만 하네]
[의의와 평가]
청풍 한벽루는 대부분 혼탁한 정치 현실과는 대비되는 깨끗한 강호의 상징으로 표상화되고 이상향에 대한 동경으로 형상화되었다. 그렇게 사대부들의 안식처로 혹은 도피처로 청풍의 한벽루는 의미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