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542
한자 東州山城
영어공식명칭 Dongjusanseong Fortr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중리 산2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박경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2년 - 동주산성 철원군지증보편찬위원회 현황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4년 3월 28일~1994년 4월 16일 - 동주산성 국립문화재연구소 지표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4년 5월~1995년 4월 - 동주산성 강원대학교박물관 지표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3월~ 1996년 11월 - 동주산성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지표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6월 14일~2005년 12월 12일 - 동주산성 강원문화재연구소 광역 지표 조사
현 소재지 동주산성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중리 산2 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문화재연구소 - 대전광역시 유성구 문지로 132[문지동 472]
출토 유물 소장처 강원대학교 중앙박물관 - 강원도 춘천시 강원대학길 1[효자2동 192-1]
출토 유물 소장처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1-1
성격 성곽
양식 포곡식 산성
크기(높이,길이,둘레) 591m[전체 길이]|800m[둘레]|65㎝[성돌 너비]|15㎝[성돌 높이]|46㎝[성돌 두께]|46㎝[성돌 너비]|26㎝[성돌 높이]|34㎝[성돌 두께]

[정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중리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개설]

동주산성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중리에 있는 삼국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이다. 조선 시대 지리지 등에 성의 사용과 관련된 기록이 전하지 않는 점에서 조선 시대에는 이미 폐성된 것으로 보인다. 성 내부에는 건물 터 3개소와 성문에 사용된 확(確)돌이 남아 있다.

[건립 경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철원’ 명칭의 연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우선 철원이라는 이름은 고구려부터 있었다. 신라 경덕왕 때 철성(鐵城)으로 고쳤고, 궁예태봉국을 건국하고, 고려 태조가 송악[개성]으로 천도하면서 이 지역의 이름을 동주(東州)라고 바꾸었다고 한다. 따라서 동주라는 이름은 고려 초에 이미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동주산성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대동지지(大東地志)』[1861~1866]에 고려 1217년(고종 4) 동주가 함락되었고, 고려 1253년(고종 40)에 몽고군이 동주산성을 함락시켰다는 기록이 전한다. 현재 동주산성의 내부에서는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따라서 동주산성이 처음 축조된 것은 삼국 시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동주산성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중리 산2번지에 있다. 동송읍에서 국도 제87호를 이용하여 북쪽으로 4.1㎞ 이동한 후 월하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백마고지 방향으로 1㎞ 이동한다. 노동당사 100m 앞에서 좌회전하여 수도국지 옆 대전차 장애물을 지나 좌회전하여 소로길로 400m 이동하면 동주산성이 나온다.

[형태]

동주산성은 높이 약 360m 내외의 봉우리 2개의 8부 능선을 둘러 쌓은 포곡식(包谷式)으로 축조된 토석혼축(土石混築) 산성이다. 전체적으로 북서-남동 방향으로 긴 땅콩 모양을 하고 있다. 전체 길이는 591m이고 둘레는 800m이다. 성돌은 너비 65㎝, 높이 15㎝, 두께 46㎝인 것이 있고, 너비 46㎝, 높이 26㎝, 두께 34㎝인 것이 있다.

[현황]

동주산성은 1992년 철원군지 증보편찬위원회에서 현황 조사를 실시하였다. 1994년 3월 28일부터 1994년 4월 16일까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지표조사, 1994년 5월부터 1995년 4월까지 강원대학교박물관에서 지표조사, 1996년 3월부터 1996년 11월까지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토기 및 기와류를 다수 채집하였다. 2004년 6월 14일부터 2005년 12월 12일까지 강원문화재연구소 광역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지리 정보를 확인하였다.

동주산성의 서쪽 대부분과 남쪽 등에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성벽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주위에는 시설물 등이 다수 들어서면서 성의 원형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이다. 산의 정상 부분에 남아 있는 성의 흔적은 약 105m 가량이다. 특히 서벽을 가로질러서 성 내부로 도로가 나면서 성벽이 잘린 부분도 다수 발견된다. 현재 동주산성의 내부에는 삼국 시대 및 통일 신라 시대 토기류, 조선 시대 기와류 등 다양한 시기의 유물이 다수 노출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동주산성은 비록 조선 시대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고려 시대에는 산성으로 기능하였고, 출토 유물들로 볼 때 삼국 시대에도 산성의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주산성은 북쪽 평야 지대의 조망이 용이한 곳에 있어 적의 남하에 대비할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철원 지역을 둘러싼 여러 나라의 전투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성곽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