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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737
한자 金順福
영어공식명칭 Kim Soonbo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원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 2월 26일연표보기 - 김순복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2일 - 김순복 갈말읍 3·1운동에 참가하여 일본 경찰에 검거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8일 - 김순복 경성지방법원에서 태 90도 언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12일 - 김순복 출옥
몰년 시기/일시 1958년 03월 03일연표보기 - 김순복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2년연표보기 - 김순복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 수훈
출생지 문혜리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문혜리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 지도보기
활동지 갈말면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순복(金順福)[1897~1958]은 1897년 2월 26일 지금의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서 태어났다. 갈말면[현 갈말읍]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1일 문혜리 서당 훈장이던 신성규(申聖奎)와 당시 보성전문학교 학생 김칠룡(金七龍)의 주도로 추진되었다. 신성규와 김칠룡이 연락을 취하자 문혜리김순복·김상보(金相保)·전사진(全士進)·김학길(金學吉)·이경삼(李敬三)·김경복(金敬福), 동막리윤호병(尹浩炳), 내대리의 임낙호(任洛鎬), 토성리의 황철성(黃徹性) 등이 적극 동조하였다.

1919년 3월 12일 청양리 헌병 주재소 앞에 모인 김순복을 비롯한 800여 명의 시위 군중은 태극기를 높이 세우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던 윤호병과 임낙호가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오후 1시경 시위대는 태극기를 휘두르며 행진하여 문혜리에서 주민들과 합세한 후 면사무소로 가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면사무소 직원들은 모두 도망쳤고 어두워지자 숨어 있던 면장 황희수가 나타나 군중 앞에서 만세를 외쳤다. 시위 군중은 밤이 깊어도 돌아갈 줄 모르고 쌓였던 울분을 터뜨려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면장의 권유로 해산하였다.

김순복은 이날 시위 현장에서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고, 1919년 5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태 90도를 언도받고 5월 12일 출옥하였다. 1958년 3월 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2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순복의 공적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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