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현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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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서 서낭에게 지내는 마을 제사.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서는 해마다 음력으로 4월 8일과 9월 9일에 갈현 서낭제를 지낸다. 갈현은 문혜리 동북쪽에 있는 고개로, 칡이 많아 고개 이름을 갈현(葛峴) 또는 갈고개, 가루개 등으로 불린다. 갈현의 고갯마루에는 서낭당이 세워져 있는데, 김화의 성황당이 세워졌을 무렵인 1772년(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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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 있는 고개. 갈현고개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 있는 고개로 동쪽의 대득봉[628.3m]과 서쪽의 태봉[560.2m]을 연결하는 능선에 자리잡고 있다.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서 지경리로 가는 국도 제43호상에 있으며, 지도상에는 ‘가로개’라고 표시되어 있다. 갈현고개의 높이는 352m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근처에 있는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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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 있는 산. 대득봉은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와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청양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해발 628m이며, 능선은 철원군 김화읍과 철원군 갈말읍의 행정 경계를 이룬다. 대득봉(大得峰)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전하여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에 어떤 심마니가 칠성기도를 하고 산삼 한 근짜리를 캐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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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군 갈말읍에 속하는 법정리. 문혜리(文惠里)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의 중앙부에 있으며, 북쪽으로 철원군 갈말읍 지경리와 철원군 김화읍 청양리, 동쪽으로 철원군 서면, 남쪽으로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 서쪽으로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 내대리와 접하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갈말면 문현리(文峴里)[문고개]의 ‘문(文)’과 지혜리(芝惠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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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남으로도 북으로도 갈 수 없었던 수복 지구 철원 사람들의 운명적인 삶과 애환. 6·25전쟁 당시 철원 사람들은 치열한 전쟁터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미군이 반격하고 인민군들이 쫓겨갈 때 철원 주민들의 80%를 끌고 올라갔다. 하지만 공산주의 열성분자들의 횡포가 싫은 사람들은 대열에서 이탈해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한국군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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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남으로도 북으로도 갈 수 없었던 수복 지구 철원 사람들의 운명적인 삶과 애환. 6·25전쟁 당시 철원 사람들은 치열한 전쟁터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미군이 반격하고 인민군들이 쫓겨갈 때 철원 주민들의 80%를 끌고 올라갔다. 하지만 공산주의 열성분자들의 횡포가 싫은 사람들은 대열에서 이탈해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한국군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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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으로 철원부사를 지낸 임률 영세불망비. 임률(任嵂)은 강원도 철원 지방에 세거하고 있던 풍천임씨(豐川任氏) 출신 인물로 일찍이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779년(정조 3) 3월 철원부사로 부임하여 8월 벼슬 자리에서 물러났다. 재임 중 철원군민들로부터 덕망이 높고 청백리로 선정을 베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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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국군의 전투 수행을 도운 한국인 노무자 부대. 6·25전쟁 중에 철원 주민들은 남으로도 북으로도 가지 못한 채 전쟁터에 남았다. 1950년 10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가 시작되었고 1951년 봄, 철원 주민들은 미군의 주민 소개 작전으로 후방으로 강제 이주하게 되었다. 경기도 포천 문하리가 철원 피난민 1차 집결지였는데,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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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국군의 전투 수행을 도운 한국인 노무자 부대. 6·25전쟁 중에 철원 주민들은 남으로도 북으로도 가지 못한 채 전쟁터에 남았다. 1950년 10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가 시작되었고 1951년 봄, 철원 주민들은 미군의 주민 소개 작전으로 후방으로 강제 이주하게 되었다. 경기도 포천 문하리가 철원 피난민 1차 집결지였는데,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