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388
한자 兵部
영어공식명칭 Byeongb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관부(전통 시대)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태봉,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홍승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창설 시기/일시 904년연표보기 - 병부 설치
개칭 시기/일시 982년 - 병부 병관으로 개편
개칭 시기/일시 995년 - 병관에서 상서병부로 개편
개칭 시기/일시 1275년 - 상서병부에서 군부사로 개편
개칭 시기/일시 1298년 - 군부사에서 병조로 개편
개칭 시기/일시 1308년 - 병조 선부에 병합
개칭 시기/일시 1356년 - 병부로 개편
개칭 시기/일시 1362년 - 병부 군부사로 개편
개칭 시기/일시 1369년 - 군부사에서 총부로 개편
개칭 시기/일시 1372년 - 총부에서 군부사로 개편
개칭 시기/일시 1389년 - 병조로 개편

[정의]

강원도 철원 지역에 도읍하였던 마진과 태봉의 중앙 관부.

[개설]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선포한 궁예(弓裔)가 신라 관제를 참작하여 중앙기구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설치한 관부이다. 군사 관련 일반 업무와 무관의 인사 등을 담당하였고, 고려 초에도 병권을 관장하는 주요 관부로 기능하였다. 고려 성종(成宗)이 중국의 3성 6부 체제를 도입하면서 6부로 편입한 결과 명칭은 유사하지만 위상과 기능은 변화하게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904년 마진을 건국한 궁예는 국가의 틀을 확립하기 위하여 광평성(廣評省) 외 18개 관부를 설치하고 수상인 광치나(匡治奈) 이하 백관들을 각 관부에 소속시켰다. 중앙통치기구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궁예는 신라의 관제를 참작하였다고 전해지는데, 병부(兵部)는 신라 관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설치 초기 병부의 위상은 광평성 바로 다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후삼국의 각축이 본격화된 시기였던 만큼 군정(軍政)을 총괄하는 병부는 핵심적인 기구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다. 궁예병부를 통하여 군사 관련 업무의 체계적 관리와 효율적 전쟁 수행을 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직 및 담당 직무]

마진·태봉(泰封)병부 조직을 보여주는 사료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다만 고려 건국 직후 태조(太祖)가 단행한 인사를 통하여 조직의 대강을 추론할 수 있다. 태조는 즉위 6일 만에 대대적인 인사 발령 조치를 내리며 병부령(兵部令)과 병부경(兵部卿)을 임명하였다. 즉위 후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진 인사였음을 감안한다면, 병부령과 병부경은 태봉의 직제를 계승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고려사(高麗史)』에는 태조 원년에 병부를 설치하고 영·경·낭중(郎中)을 두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낭중 또한 태봉의 직제에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고려사』에서는 병조(兵曹)가 관장하는 업무로 무선(武選)·군무(軍務)·의위(儀衛)·우역(郵驛)을 거론한다. 궁예 정권에서 병부가 담당하였던 업무 또한 고려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선은 무관의 선발과 인사 고과를, 군무는 군사 관련 일반 업무를 의미한다. 의위는 의례나 중요 행사에서 국왕과 태자 등을 위하여 갖추는 의장(儀仗)과 호위를, 우역은 역참과 연관된 교통·통신 등을 지칭한다.

[변천]

병부는 초기 서열 2위의 관부였으나 고려 건국 직후의 인사 기록에서는 광평성·내봉성(內奉省)·순군부(徇軍部)에 이어 서열 4위를 차지하였다. 학계에서는 911년 태봉 건국 후 통치체제의 재정비가 이루어지며 병부의 위상에 변화가 생겼을 것으로 추정한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군령 전담 기구를 별도로 두어 효율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병권을 분산시켜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 하에 궁예가 순군부를 설치하였다고 설명한다.

병부의 위상과 기능은 982년에 이르러 다시 한 차례 변화하였다. 성종이 중국의 3성 6부 체제를 도입한 결과 병부는 병관(兵官)으로 개편되어 어사도성(御事都省)의 하층 조직인 어사6관으로 편입되었다. 995년에는 어사성이 상서도성(尙書都省)으로 바뀌면서 상서병부(尙書兵部)가 되었다. 원간섭기 병부는 관제 격하로 인하여 군부사(軍簿司)[1275, 1362, 1372]·병조(兵曹)[1289]·선부(選部)[1308]·총부(摠部)[1369] 등으로 수차례 개편이 반복되었고, 공양왕(恭讓王) 시기인 1389년 다시 병조가 되어 조선 시대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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