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549
한자 鐵原鄕校址
영어공식명칭 Cheorwon Hyanggyoji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월하리 67번지 외 21필지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영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6년 07월 28일연표보기 - 철원향교지 강원도 기념물 제87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철원향교지 강원도 기념물 재지정
폐지 시기/일시 1592년~1598년 - 철원향교 소실
폐지 시기/일시 1950년 6월 25일~1953년 7월 27일 - 철원향교 소실
소재지 철원향교지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월하리 67번지 외 21필지지도보기
성격 향교터
지정 면적 52,950㎡
문화재 지정번호 강원도 기념물

[정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월하리에 있는 철원향교의 터.

[개설]

철원향교지(鐵原鄕校址)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월하리에 있는 옛 철원향교 터이다. 철원향교는 조선 초기에 건립되어 6·25전쟁 때까지 존속하였으며 철원 지역 유교 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철원향교지는 2006년 7월 28일 강원도 기념물 제87호로 지정되었다.

[변천]

철원향교의 창건 연대는 기록이 없어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1424년(세종 6) 경기도의 철원·삭녕 등지에 흉년이 들었으므로 향교 생도들을 햇곡이 날 때까지 방학시키고, 교관들도 집으로 돌아갈 것을 지시한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7년 철원향교에서 발간한 『철원향교지』에는 1568년(선조 원년) 철원 유림들에 의해 철원향교가 건립되었다고 하나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조선 시대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 문집인 『백헌집(白軒集)』에는 1657년 철원향교를 중수하고 이경석이 철원부사인 조카 이민행(李敏幸)의 부탁으로 기문(記文)을 작성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철원향교는 임진왜란 당시 모두 소실되어 초옥 몇 칸을 지어 유지하다가 1604년(선조 37) 부사 조인징(趙仁徵)이 기와로 개수하였고, 이후 세월이 지나 퇴락한 것을 1629년(인조 7) 부사 김확(金矱)이 구 건물을 수리하였다. 그후 철원향교는 심한 풍우로 피해를 입어 기둥이 기울어지고 장벽(墻壁)이 붕괴된 것을 1657년(효종 8) 다시 중수하였다.”고 적혀 있다.

한편 일제 강점기에도 향교 시설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1915년 철원군수 유흥순(柳興順)이 40여 칸의 대성전(大成殿)과 동재(東齋)·서재(西齋)·명륜당(明倫堂)을 중수하였다. 이후 1945년 광복 후 공산 정권 아래에서 향교 건물과 토지는 몰수되어 고아원으로 사용되다가 6·25전쟁 때 완전히 소실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수복되었으나 향교터가 민간인 출입 통제선 안에 놓여 군의 통제와 통행 불편 등으로 원래 위치 복원이 어렵게 되자 1967년 군내 유림 김윤환·박봉규·안교수 등이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 99-5번지 대지 250평[826㎡] 자리에 대성전 10평[33㎡], 명륜당 15평[50㎡], 부속사 7평[23㎡] 등을 새로 신축하였다. 철원군은 철원향교가 비좁아 원래 철원향교터월하리 향교골에 복원하려 하였으나 향교지에서 철원태수였던 왕건의 사택지가 발견되어, 2010년 화지리 286-1번지에 새로운 향교 건물을 신축하였다. 신축한 철원향교 대성전에는 유림 5성위[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와 우리나라 18현[설총, 최치원, 안향, 정몽주, 김굉필, 조광조, 이황, 정여창, 이언적, 이이, 성혼, 김장생, 송시열, 송준길, 박세재, 김인후, 조헌, 김집]의 위폐를 모시고 매년 봄·가을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위치]

철원향교지철원군 철원읍 월하리 67번지 외 21필지에 있다. 조선 후기 이경석이 쓴 「철원부향교중신기(鐵原府鄕校重新記)」에는 철원향교 위치가 “철원부 남쪽 3리[약 1.2㎞] 되는 곳이 향교인데 산이 있어 북쪽으로부터 동남쪽으로 갈라지면서 봉우리를 이룬 것이 5개이다. 두 번째 봉우리 뒤 세 번째 봉우리 앞에 있다. 가까이는 보개산에 읍(揖)하는 형세이고 멀리는 넓은 들판으로 통하며 긴 개천이 좌측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8세기 전반에 발간된 『여지도서』에는 향교의 위치와 규모에 대하여 철원향교는 부 남쪽 3리에 있으며 전체 규모가 54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2004년 철원향교 복원을 추진하면서 매장문화재 조사를 위한 시굴 조사를 하면서 철원향교지 아래층에서 통일 신라 시기 석등하대석을 비롯한 여러 유물과 유구가 확인되어 원래 위치에 복원이 불가하게 되었다. 따라서 원래 위치보다 남쪽으로 500m 가량 떨어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 286-1번지에 총 사업비 32억 3600만 원을 들여 2010년 4월 21일 새롭게 신축하였다.

[의의와 평가]

철원향교6·25전쟁 때 완전히 불타 없어져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닌 민간인 출입 통제선 밖 화지리에 새로 건립해 유지하다가 2010년 새로 지었다. 철원향교지는 터만 남아 있지만 혼란기에도 유교적인 전통을 이어 가려는 철원 군민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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