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596
한자 徐琪勳牧師殉敎紀念碑
영어공식명칭 Memorial to the Martyrdom of the Pastor Seogihun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장방산길 33-14[장흥리 740-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원미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67년 02월 13일연표보기 - 서기훈 목사 순교기념비 건립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951년 1월 8일 - 서기훈 목사 순교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0년 - 장흥교회 건립
현 소재지 장흥교회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장방산길 33-14[장흥리 740-1]지도보기
성격
양식 기단|대석|비|갓
재질 오석
크기(높이, 너비, 두께) 높이 185㎝[전체]|높이 114㎝[비석]|폭 41㎝[비석]|두께 17㎝[비석]

[정의]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 장흥교회에 있는 6·25전쟁 때 순교한 서기훈 목사 기념비.

[개설]

1920년 설립된 장흥교회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철원제일교회와 더불어 철원군 기독교 전파의 모태가 되는 교회로 주민들에게 신문화 운동을 통하여 근대적인 민족 사상을 일깨워 주었다. 장흥리 주민들은 공산 정권 아래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신한애국청년회를 조직하여 반공 활동에 나섰고, 6·25전쟁 당시 대한청년단 활동으로 이어져 인민군과 전투를 치르기도 하였다. 6·25전쟁 당시 장흥리에서 순교한 서기훈 목사를 기리며 1967년 2월 13일 장흥교회서기훈 목사 순교기념비(徐琪勳牧師殉敎紀念碑)를 건립하였다.

[건립 경위]

1950년 6·25전쟁 중에 장흥리 마을 청년[대한청년단 회원]들이 동네 공산당 열성분자를 처형하려 하자 서기훈 목사가 화해와 용서를 설교하여 살생을 피하였다. 중공군이 밀고 내려오자 주민들과 함께 피난을 나왔다가 10가구가 못 빠져나가고 마을에 남자 서기훈 목사는 한밤중에 가족을 이끌고 마을로 되돌아가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였다. 1950년 11월경 공산군 패잔병들이 침입하여 동네 청년들과 교전을 벌여 공산군 9명이 죽었다. 이 일로 서기훈 목사는 검거되어 공산군을 사살한 청년의 이름을 대라고 문초를 당한 후 풀려났으나, 12월 31일 정치보위부에 재검거되어 1951년 1월 8일 철원읍 화지리 암소고개에서 총살당하였다. 1967년 2월 13일 박창국 감리사의 발의와 장흥교회 교인들의 헌금으로 서기훈 목사의 신앙을 기리는 서기훈 목사 순교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서기훈 목사 순교기념비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장흥1리 장흥교회에 있다.

[형태]

서기훈 목사 순교기념비는 2층 기단 위에 대석이 있고 오석(烏石)으로 된 비가 세워져 있으며 갓이 씌워져 있다.

[금석문]

서기훈 목사 순교기념비는 앞면에 ‘고 서기훈 목사 순교기념비’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2020년 설립 100주년을 맞는 장흥교회는 일제 강점기 신석구 목사가 시무하였다. 공산 정권 아래에서 서기훈 목사가 순교하자 철원군 기독교 성지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외부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서기훈 목사 순교기념비는 공산 치하와 6·25전쟁 중 기독교 신앙을 지키고 실천하다가 순교한 서기훈 목사의 정신을 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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