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447
한자 現代
영어공식명칭 Modern Times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규

[정의]

해방 이후 현재까지 강원도 철원 지역의 역사.

[개설]

1945년 조국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반도는 미·소 열강에 의하여 38도선을 경계로 갈라졌다. 8·15 해방이 자력 아닌 연합군에 의한 해방이었기에 우리 민족의 비운과 수난의 역사는 그때부터 내재돼 있던 것이었고, 국토 분단과 사상이념의 갈등이 반세기 이상 오래 지속되리라고는 당시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무조건 항복하자 철원의 일본인 공직자와 추종하던 일부 친일파들이 자취를 감추어 무정부상태로 사회 혼란이 가중되었다. 철원 군민들은 치안과 행정의 공백을 메우고자 철원군자치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에 독립운동가 이봉하를 추대하고 각 읍면 임원 구성을 하여 자치 행정과 치안 사업에 진력하였다.

1945년 8월 말경 소련군의 철원 진주는 철원 군민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소련군 진주에 맞추어 지하 공산주의자였던 당원들이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소련군은 각 지방마다 자위대, 보안대, 치안유지위원회, 건국준비위원회 등 자치단체를 조직하여 공산주의자의 영향 아래 운영하게 하였고, 북한 지역의 행정권을 통합 행사하는 5도 임시인민위원회를 발족시켰다. 1946년 ‘임시인민위원회’이었던 것이, 1947년 2월 중앙에서 말단 행정단위인 리·동에 이르기까지 선거를 실시하여 ‘각급 인민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인민위원회 조직과 더불어 본격적인 공산화 작업에 들어간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남침을 위한 인민군 증강에 총력을 쏟는다. 그리고 1946년 3월 5일 단행한 토지개혁을 계기로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는 한층 강화되었다. 강원도청 소재지인 춘천이 38도선 이남이기에 철원군을 북 강원도 인민위원회 소재지로 정하고 도 인민위원회를 위시하여 공산당 도당부 등 도 단위 기관이 철원군에 설립되어 북 강원도청 소재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1946년 가을부터 노동당사 철원군지부 건설 부역에 주민들이 강제 동원되었고 건립 성금으로 쌀을 걷어 냈다. 1948년 남한 지역에서는 UN 감시 하에 자유 총선거가 실시되어 단독정부와 제헌국회가 구성되었고, 북한 지역은 소련군 비호 아래 김일성이 공산주의 독자정권을 수립하였다. 김일성은 남한 적화 통일을 이루고자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일제히 38선을 넘어 전쟁을 일으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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