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634
한자 寧海朴氏世居地
영어공식명칭 Residential Place of Yeonghae Park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성주

[정의]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영해박씨의 세거지.

[개설]

영해박씨(寧海朴氏) 시조는 신라 눌지왕 때의 충신인 박제상(朴堤上)이고, 중시조는 고려 때 전법사판서을 지낸 박명천(朴命天)이다. 박제상의 39세손인 박창령(朴昌齡)이 영흥소윤 재임 시 세종의 명으로 선원전(璿源殿)을 건립하고 평양서윤에 임명되어 부임지로 향하던 도중에 사망하여 지금의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 원동에 묻혔다.

박창령의 아들인 박랑(朴浪)이 철원에서 시묘살이를 하던 중에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동생 박도(朴渡)와 박제(朴濟), 아들 박규손(朴奎孫)·박효손(朴孝孫)·박천손(朴千孫), 조카 박인손(朴璘孫)·박계손(朴季孫), 그리고 김시습(金時習)조상치(曺尙治)가 철원에 들어와 초막동에 은거하였다. 이후 관의 감시가 심해지자 김시습 등은 전국으로 흩어졌지만 박규손박천손은 철원에 남아 정착하였다.

[명칭 유래]

영해박씨 철원 세거지인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는 모래울 또는 사곡(沙谷)이라 불렸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사곡·하사곡·당현·안양동·아사리·후동·원동·봉춘리를 병합하여 사곡리가 되었다.

[현황]

일제 강점기에 영해박씨 후손들이 강원도 철원군 일대에 500여 호가 거주하고 있었으나 6·25전쟁 때 각지로 흩어졌고, 1954년 수복 후 일부만이 돌아와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도창리, 철원군 근남면 사곡리·근북면 금곡리·백덕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2015년 통계청 인구 조사에 따르면 철원군에 살고 있는 영해박씨는 292명으로 파악되었다.

[참고문헌]
  • 철원군지증보편찬위원회, 『철원군지』上·下(철원군, 1992)
  • KOSIS 국가통계포털(http://kosis.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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