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0767
한자 金敎洙
영어공식명칭 Kim Kyoso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원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3년 06월 19일연표보기 - 김교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51년 8월 18일 - 김교수 육군종합학교 32기로 소위 임관
활동 시기/일시 1953년 7월 - 7월 14일 - 김교수 김화군 원동면 교암산에서 전투
몰년 시기/일시 1953년 07월 14일연표보기 - 김교수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1년 9월 7일 - 김교수 대위 및 제6중대 장병 공적비 건립
출생지 함흥 - 함경남도 함흥시
거주|이주지 서울 - 서울특별시
활동지 교암산 - 강원도 철원군 원동면 지도보기
성격 군인
성별

[정의]

6·25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전사한 군인.

[활동 사항]

김교수(金敎洙)[1923~1953]는 1923년 6월 19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흥남공과대학을 수료한 후 월남하여 육군종합학교 32기로 입학하였다. 1951년 8월 18일 육군 소위로 임관한 이후 각 지구 전선에 참가하였으며, 6사단 제2연대 2대대 6중대장으로 교암산 지구 전투에 참가하였다. 교암산은 금성천 동쪽 기슭의 아군 주저항선에서 가장 표고가 높아 인근의 야산지대를 한눈에 감제할 수 있는 방어 편성상 핵심적인 고지였다. 아군이 이 고지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화천선까지 철수해야만 하는 방어진의 최대 거점이었다.

1953년 7월 13일 휴전이 가까워지자 중공군은 중부 전선의 요충지인 금성 돌출부를 탈취하기 위하여 이른바 7·13공세라는 최후의 대공세를 개시하였는데, 김교수가 있던 6사단 2연대는 금성 남쪽 김화군 원동면의 교암산 방어를 담당하였다. 이 전투에서 김교수와 중대원들은 여섯 차례에 걸친 적의 습격을 육박전과 진내 사격으로 물리치며 일진일퇴의 혈전을 거듭하였다.

1953년 7월 14일 1개 연대 규모 이상의 적이 6중대를 완전히 포위하자 김교수는 포병의 지원 사격을 요청하고 중대원들에게 동굴로 대피할 것을 명령하였으며, 얼마 남지 않은 수류탄을 던지고 뛰쳐나가 적과 치열한 백병전 끝에 전사하였다. 교암산 전투는 아군의 안전한 철수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고, 화천 방향으로 철수한 아군 병력이 전열을 재정비한 후 반격을 감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상훈과 추모]

1953년 10월 13일 대한민국 정부는 김교수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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