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1106
한자 洪氏柳氏-忠烈祠
영어공식명칭 Mr. Hong, Mr. Yoo, and Chungnyeolsa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현대/현대
집필자 최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8년 7월 1일 - 「홍씨·유씨와 충렬사」 강원도 철원군 서면 와수리 노인정에서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 - 「홍씨·유씨와 충렬사」 철원군에서 발행한 『철원군지』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5년 - 「홍씨·유씨와 충렬사」 강원도·철원군에서 발행한 『철원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0년 - 「홍씨·유씨와 충렬사」 철원문화원에서 발행한 『철원향토지』 4권에 수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50년 - 「홍씨·유씨와 충렬사」 충렬사 창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 「홍씨·유씨와 충렬사」 충렬사 6·25전쟁 때 화재로 전소
관련 지명 철원 충렬사지 -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길 603[읍내리 630]지도보기
채록지 와수리 노인정 - 강원도 철원군 서면 와수리 지도보기
성격 인물 설화
주요 등장 인물 홍명구|유림
모티프 유형 병자호란 때 목숨을 바친 홍씨와 유씨

[정의]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에 있었던 충렬사에 배향된 홍명구유림에 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홍씨·유씨와 충렬사」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에 있었던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된 홍명구(洪命耉)[1596~1637]와 유림(柳琳)[1581~1643]에 대한 이야기이다. 홍명구유림은 병자호란(丙子胡亂)[1636] 때 김화로 들어온 청나라 군대에 맞서 싸우다 숨을 거두었고, 두 사람의 넋을 기리기 위해 충렬사를 지었다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홍씨·유씨와 충렬사」는 1988년 7월 1일 강원도 철원군 서면 와수리 노인정에서 채록하였다. 「홍씨·유씨와 충렬사」는 1992년 철원군이 발행한 『철원군지』와 1995년 강원도·철원군이 발행한 『철원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등에 수록되었으며, 또한 철원문화원에서 2000년에 발행한 『철원향토지』 4권에도 수록되었다.

[내용]

철원군 김화읍(金化邑)에는 충렬사지(忠烈祠址)가 있다. 충렬사는 1636년(인조14) 병자호란 때 공을 세운 홍명구유림을 모신 사당이다. 병자호란 당시 임경업(林慶業)[1594~1646] 장군이 함경도 의주를 지키고 있었다. 청나라 군대는 의주를 지나쳐 오다가 임경업에게 대패하여 되돌아갔다. 청나라 공주는 전쟁에서 지고 돌아온 청나라 장수에게 “조선은 개 형국인데, 입으로 들어가면 물지 가만히 있겠느냐? 개는 뒤를 쳐야지 쫓겨 들어간다. 다시 나가라.”라고 하여서 다시 조선으로 군대를 끌고 왔다. 청나라 군대가 함경도를 지나 김화군에 도착하였다. 당시에는 봉화(烽火)가 긴급 연락 수단이었다. 그 사실을 안 청나라 군대가 봉화꾼들의 손목을 잘라 김화까지 쉽게 밀고 들어올 수 있었다.

김화에 들어온 청나라 군대는 오성산(五聖山)[1,062m] 꼭대기에 올라가 진을 쳤다. 조선 병사들은 성재산(城齋山)[471m]에 진을 치고 맞서 싸웠다. 오성산성재산보다 높아 청나라 군대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활을 쏘고, 조선 군대는 위를 올려다보면서 활을 쏘았다. 조선 군대가 올려다보고 활을 쏘니 화살이 얼마 날아가지 않고 떨어지고, 반대로 청나라 군대가 쏜 화살들은 조선군 진영 깊숙이 떨어졌다. 이에 조선 군대는 한 가지 꾀를 내어 잣나무를 한 길 이상씩 잘라 세워 두었다. 멀리서 조선 병사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고는 오성산을 뒤로 돌아서 올라가 청나라 진영을 급습하였다. 조선군에 쫓긴 청나라 군대가 성재산에 진을 친 조선군 진영으로 내려와 보니 잣나무들이 병사들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홍씨와 유씨 두 명만이 진영을 지키고 있었다. 청나라 군대가 내려오자 홍씨와 유씨는 잣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숨었다. 그러나 결국 청나라 군대에게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그 후 사람들은 충렬사라는 사당을 짓고 두 사람의 넋을 위로하는 제향을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홍씨 유씨와 충렬사」는 ‘병자호란 때 목숨을 바친 홍씨와 유씨’를 기본 모티프로 하고 있다. 충렬사6·25전쟁 때 소각되었다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여 복원되었다. 충렬사의 사당에는 현재 홍명구유림을 배향하고 있다. 홍명구는 병자호란 당시 청군 선봉장인 마부대(馬夫大)와 용골대(龍骨大)의 대군을 맞아 김화읍 내리 탑골의 자모산성(慈母山城)에 진을 치고 싸우다 전사한 인물이다. 유림은 김화 백수봉(栢樹峯)에서 근왕병 2,000명, 의용병 300명으로 적군을 유인·섬멸하는 데 전과를 올린 인물로 알려져 있다. 「홍씨·유씨와 충렬사」홍명구유림충렬사에 배향된 유래를 설화로서 설명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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