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801289
한자 龍潭-
영어공식명칭 Story of Yongdam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강원도 철원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현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904년 - 「용담 이야기」 저자 이태준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932년 9월연표보기 - 「용담 이야기」 『신동아』 9월호에 발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1년 - 「용담 이야기」 박문서관에서 발간된 수필집 『무서록』에 실림.
배경 지역 용담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율이리 지도보기
성격 수필

[정의]

강원도 철원 출신의 소설가 이태준이 1932년 발표한 수필.

[개설]

「용담 이야기」는 1932년 『신동아』 9월호에 발표된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1904~?]의 수필이다. 이태준이 쓴 소설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던 고향 마을 ‘용담’을 묘사하고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1941년 박문서관에서 발간된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에 실린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 이태준은 현재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에 속하는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서 출생하였다. 월북 후 1956년 숙청당하였다고 하나 사망 연도는 불확실하다.

[구성]

「용담 이야기」의 전반부는 정겹고 추억할 내용이 많은 용담의 아름다운 모습을 묘사하였다면, 후반부는 황폐해져 가는 고향의 모습과 떠나간 친구들에 대한 아쉬움을 담고 있다.

[내용]

내 고향 용담은 산 많은 강원도에 있다. 철원 땅이지만 고요히 정거장도 없는 경원선 한 모퉁이에 산을 지고 산을 바라보고, 사라지는 연기만 남기고 지나다니는 기차들이나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아 있는 조그만 산촌이다. 서울에서 차를 타고 가면 세 시간이 다 못 되어 이 동네 앞을 지난다. 차가 지날 때마다 채마밭머리에서, 장독대에서 사람들이 내다본다.

용담은 아름다운 촌이다. 금강산과는 먼 곳이지만 금강산과 한 계통인 듯하게 수려한 산수는 처처에 승경(勝景)을 이룬다. 뒤에는 나지막한 두매봉재가 조석으로 오르기 좋은 조그만 잔디밭 길을 가지고 있다. 앞에는 언제든지 구름을 인 금학산(金鶴山)[947m]이 창공에 우뚝하니 솟아 있다. 손을 씻으려면 윗골과 백학골에서 흘러나오는 옥수천(玉水川)이 있고, 수욕(水浴)이나 천렵이나 낚시질이 하고 싶으면 선비소, 한내다리, 쇠치망, 진소, 칠송정 모두 일취일경(一趣一景)이 있는 곳이다.

나는 여름마다 용담에 간다. 용담에 가면 흔히 한내다리 아래에 가서 긴 여름날을 지운다. 딸기를 따 먹고 참외를 사 먹고 낚시질을 하고, 하늘에 뜬 청산(靑山)을 바라보며, 다시 물속에 잠긴 청산 위를 헤엄치며, 뻐꾸기 소리, 매미, 쓰르라미 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이따금 기차가 도시 풍경을 가득가득 담은 차창들을 끌고 지나갈 때 나는 꽃이면 꽃을 들고 고기꾸럼지면 고기꾸럼지를 들고 높이 휘둘러 원산 금강산으로 가는 아름다운 아가씨들의 일빈(一嚬)[얼굴을 찡그림]을 낚어 보는 것도 한내다리에서나 할 수 있는 낚시질이다. 올여름에도 어서 용담에를 가야 한다. 어서 참외가 났으면…….

그러나 용담은 슬픈 곳이다. 내 옛집이 없고 내 부모가 안 계셔서만 슬픈 것이 아니다. 어려서 이만 글자라도 나에게 가르쳐 준 봉명학교는 망하여 없어지고, 천진스럽게 장난할 궁리밖에 모르던 모든 죽마들은 대개는 생업을 찾아 동으로 서로 흩어졌다. 몇 사람의 남아 있는 친구도 있지만 황폐하여 가는 동네를 지킬 길이 없어 팔아먹은 조상의 무덤이나 바라보고 한숨 짓는 그네뿐이다.

오오 즐거운 고향이여!

그리고 슬픈 고향이여!

[특징]

수필 후반부에 나오는 ‘봉명학교’는 이태준의 5촌 당숙인 이봉하(李鳳夏)[1887~1962]가 설립한 곳으로, 휘문고보와 일본 도쿄 조치대학[上智大學]을 중퇴한 이태준이 졸업장을 받은 유일한 학교로 알려져 있다. 이태준이 졸업한 이듬해에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주도한 일로 폐교되었는데, 그 모습이 단편 「어떤 날 새벽」에 일부 남아 있다. 학교가 폐교되었는지도 모르고 10리, 20리 밖에서 모여드는 학생들에게 미친 사람처럼 조약돌을 던지며 쫓아 보내는 윤 선생의 모습에서 폐교되던 날의 아픔이 잘 그려져 있다.

이렇듯 이태준의 고향 용담은 이태준의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투영되어 있고, 고향에 대한 이태준의 애틋함을 「용담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태준「용담 이야기」를 썼을 나이가 서른이 채 되기 전이다. 고향을 이토록 그리워할 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이다. 더구나 돌아올 여름에도 곧 용담에 간다고 하니,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을 논하는 글치고는 매우 애틋하다. 하지만 이태준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면 선뜻 이해가 된다. 이태준은 여섯 살이 되던 해,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한 아버지를 따라 고향을 떠난다. 하지만 아버지가 요절하고, 어머니와 다시 돌아온 곳은 고향 철원이 아니고 함경도 ‘배기미’라는 작은 항구였다. 배기미에서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작은 식당을 열어 어린 세 남매를 키우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이태준은 외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다시 고향 용담으로 돌아온다. 그때가 1912년이었다. 수욕이나 천렵을 하며 동무들과 행복하게 지내던 곳을 떠나, 부모의 뜻에 따라 떠돌던 소년에게 고향은 너무나 그리운 곳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다시 돌아온 고향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없었으니,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시절의 완벽한 고향 용담은 다시는 갈 수 없는 그리운 곳이 되었을 것이다. 이태준의 고향에 대한 사랑은 다른 작품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녹아 있다. 누구도 관심조차 갖지 않을 철원의 작은 마을이 회자되고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이태준의 애향심 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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