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309
한자 和睦驛
영어공식명칭 Hwamok Stati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리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재관

[정의]

조선시대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리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개설]

화목역(和睦驛)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리에 있었던 역의 하나로서 안기도(安奇道)의 안동-청송-흥해 방면으로 이어지는 역로(驛路)에 있었다. 조선시대 경상도 안동의 안기역(安奇驛)을 중심으로 설치되었던 안기도는 안동을 중심으로 의성-의흥-신령 방면, 안동-청송-흥해 방면, 안동-진보-영해 방면으로 이어지는 역로였다. 소속 역은 주로 소로(小路) 또는 소역(小驛)에 속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공문서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 숙박 및 공물 진상 등의 관물 수송을 담당하기 위한 기관으로 화목역이 만들어졌다.

[관련 기록]

화목역에 관해서는 조선시대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를 소개하고 있는 각종 지리지(地理志)나 읍지(邑誌)의 역원조(驛院條)에 역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많은 수의 역이 조선 후기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였기에 그 위치나 다른 역과의 이격거리, 보유한 역리(驛吏), 역노비(驛奴婢), 마필(馬匹) 등의 기록이 남아 있어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1937년 간행된 『청기지(靑己誌)』에 따르면 화목역은 청송부(靑松府) 남쪽 70리[약 28㎞], 동쪽으로 문거역(文居驛)과 30리[약 12㎞], 서쪽으로 의성 청로역(靑路驛)과 40리[약 16㎞]의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중마(中馬) 2필, 복마(卜馬) 5필, 역리(驛吏) 315인, 역노(驛奴) 8인, 역비(驛婢) 3인을 보유하였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고종조에 간행된 『영남역지(嶺南驛誌)』「안기도사례(安奇道事例)」에는 화목역 소유의 위전답(位田畓)이 39결(結) 13부(負) 2속(束)으로 확인된다.

[내용]

화목역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리 원화목(元和睦)에 있었던 역이다. 화목역이 위치한 뒤쪽에 화목재(和睦-)가 있는데, 지금은 국가지원지방도68호선이 지나가는 도로이나 예전에는 신령, 의흥으로 가는 큰길로서 기능하였으며, 화목역도 여기에 걸맞은 역으로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변천]

고대 삼국시대부터 설치되어 운영된 역은 미증유의 전란인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그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 명(明)의 파발제(擺撥制)를 정착시켜 봉수(烽燧)와 더불어 군사 통신수단의 역할을 맡게 됨으로써 역의 통신 기능이 약화되었다. 이와 같은 조선의 역은 1896년(고종 33) 근대적인 통신제도와 철도 교통이 점차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됨으로써 폐지되기에 이르렀으며, 화목역도 이러한 흐름을 따라 그 기능을 상실하고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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