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7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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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景潞妻驪興閔氏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홍수 |
[정의]
조선 후기 청송 출신의 열녀.
[가계]
여흥민씨(驪興閔氏)는 조선 전기 문신이자 태종(太宗)의 장인인 어은(漁隱) 민제(閔霽)[1339~1408]의 후손인 민시혁(閔始爀)의 딸이다. 남편 서경로(徐景潞)의 본관은 달성(達城)으로 구계(龜溪) 서침(徐伔)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여흥민씨는 타고난 품성이 영명하며 어버이에게 효도를 다하고 아랫사람에게 자애를 베풀었다. 민씨가 예닐곱 살 때 대부(大父)인 통정대부(通政大夫) 민상현(閔尙賢)은 늘 민씨를 곁에 두었다. 어린 소녀 민씨가 동네 서당에 글을 배우러 온 아이들이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읽는 소리를 듣고서 그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없이 통달하니 손자가 없는 처지의 민상현은 각별히 민씨를 아꼈다.
민씨가 열세 살 되던 해에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모두 여의게 되었다. 민씨는 길쌈을 하고 바느질품을 팔아 가면서 홀로된 어머니 김씨를 정성껏 봉양하였다. 민씨는 스물두 살에 서침의 후손인 서경로에게 출가하였다. 민씨는 시집오자마자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알뜰히 살림을 살며 한결같이 여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하였다. 시집온 지 8년 만에 남편이 병을 얻어 요절하였다. 남편이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나 버리니 민씨가 손발이 닳도록 길쌈하고 바느질품, 빨래품을 팔아가며 재산을 모아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서 남편의 조카인 서병규(徐炳奎)를 양자로 맞이하여 가문의 대를 잇게 하였다.
또 친정집에도 후사가 없는 것이 너무도 마음이 쓰여 거금을 들고 친정의 아저씨뻘 되는 민지혁(閔之爀)을 찾아가서 그의 둘째아들 민치순(閔致舜)을 양자로 삼게 해달라고 애걸하였다. 당시 민치순은 서른두 살로 이미 결혼을 해서 처자식도 있는 처지였기에 선뜻 허락하려 하지 않았다. 민씨의 딱한 처지와 애끓는 하소연은 민지혁의 마음에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결국은 민씨의 청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민씨는 민치순을 양자로 들여 친정집의 대를 잇게 하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사람이 남몰래 친정집의 묘지에 시신을 매장하였다. 민씨는 이 어려운 일을 이제 막 양자로 들인 동생인 민치순에게 차마 맡길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민씨는 손수 쓴 소장(訴狀)을 품에 안고 관아로 찾아가 부리(府吏)에게 바쳤다. 부리가 그 소장에 들어 있는 내용을 읽어 보니 사연이 애처롭기도 하고 사리(事理)에 합당하였다. 부리는 엄명을 내려 그 시신을 다시 옮겨 묻게 하는 한편 그 자신의 봉급을 들여 도와주었다. 사람들은 민씨가 아녀자의 몸으로 감당하기에 벅찬 일을 맡아서 모두 해냈다고 입을 모아 칭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