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7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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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福洙 |
영어공식명칭 | Nam Boksu |
이칭/별칭 | 경도(景都),남수복(南洙卜)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80년 5월 9일 - 남복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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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6년 3월 - 남복수 산남의진 의병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931년 01월 24일 - 남복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2년 - 남복수 대통령 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남복수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1길 24-1[월매리 523]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1길 24-1[월매리 523] |
활동지 | 산남의진 - 경상북도 영천시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개설]
남복수(南福洙)[1880~1931]는 1906년 3월 영양남씨(英陽南氏) 일족인 남석우(南錫祐) 등과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과 군수품 수집에 크게 공헌하였으나 부상을 입고 귀향하였다.
[가계]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경도(景都). 이명은 남수복(南洙卜). 1880년 5월 9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 523번지에서 아버지 남붕석(南朋錫)과 어머니 밀양박씨(密陽朴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남복수는 1906년 3월 산남의진에 참여하였다. 산남의진은 을사늑약 이후 동엄(東广) 정환직(鄭煥直)의 명을 받은 그의 아들 단오(丹吾) 정용기(鄭鏞基)가 향리 영천(永川)에서 주변 각 군의 의병을 규합하여 창의한 의병진이다. 남복수는 청송 지역에서 영양남씨 일족인 남석우, 남석인(南錫仁), 남석하(南錫夏), 남석구(南錫球), 남석술(南錫述) 등 17명과 함께 산남의진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남복수는 산남의진을 지원하기 위하여 군자금 모집과 무기 수집 등에 종사하는 한편, 1907년 9월 1일 대장 정용기를 비롯하여 이한구(李漢久), 손영각(孫永珏), 권규섭(權奎燮) 등이 전사한 입암전투(立巖戰鬪) 등에도 참여하였다. 그 뒤 대장 정환직의 휘하에서 입암(立巖), 동대산(東臺山), 화장(花壯)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던 중 부상을 입고 귀향하였다. 1931년 1월 2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2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