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7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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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晟鎬 |
영어공식명칭 | Min Seongho |
이칭/별칭 | 성지(成之),청당(靑棠)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36년 - 민성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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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6년 3월 - 민성호 청송의진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08년 02월 24일 - 민성호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7년 - 민성호 건국포장 추서 |
출생지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
활동지 | 청송의진 - 경상북도 청송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청송의진 백의종사 |
[정의]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개설]
민성호(閔晟鎬)[1836~1908]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백의종사(白衣從事)로 활동하였다.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지(成之), 호는 청당(靑棠). 1836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서 아버지 산곽(山郭) 민치박(閔致博)과 어머니 상락김씨(上洛金氏)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880년 증광시(增廣試)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활동 사항]
민성호는 1896년 3월 청송의진의 창의(倡義) 초기부터 참여하였다. 1896년 3월 8일 안동의진(安東義陣)의 소모장(召募將)인 유시연(柳時淵)이 청송으로 들어와 청송군 관아의 군기(軍器) 탈취를 시도하고 거의(擧義)를 촉구하는 격문을 청송 유림들에게 보냈다. 이에 고무된 청송 유림들과 함께 토적복수(討賊復讐)를 기치로 걸고 창의를 추진하였다. 3월 12일 청송 유림 200여 명과 함께 향회(鄕會)를 개최하여 창의하기로 하고, 이날 오후 객사(客舍)에서 창의장(倡義將)으로 심성지(沈誠之)를 추대하였다. 3월 15일 심성지는 부장(副將) 조성박(趙性璞), 우익장(右翼將) 권성하(權成夏), 좌익장(左翼將) 김상길(金相吉)을 내정하고, 참모(參謀)와 서기(書記) 이하를 선발하였다. 3월 16일 대장기(大將旗)를 세우고 창의하였다.
민성호는 3월 17일 권탁수(權鐸洙), 서효원(徐孝源), 민성호, 이중성(李中性), 조성눌(趙性訥) 등과 함께 6인의 백의종사에 차출되어 축문과 창서사(唱誓辭)를 낭독하며 천신과 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3월 22일 김대락(金大洛)을 중군장(中軍將), 남두희(南斗凞)를 우익장, 서효원(徐孝源)을 의영도지휘사(義營都指揮使)로 임명하여 진용을 갖춘 뒤, 3월 28일 모량도청(募糧都廳)과 백의종사를 혁파할 때까지 청송의진의 진용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청송의진이 고종의 해산 조칙(詔勅)에 따라 5월 25일 해진하여 의병 활동을 중단하는 8월까지 활동하였다. 1908년 2월 2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