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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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東鎬 |
영어공식명칭 | Shin Dongho |
이칭/별칭 | 경백(敬伯)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42년 - 신동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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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6년 4월 - 신동호 청송의진 참모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920년 - 신동호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7년 - 신동호 건국포장 추서 |
출생지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 |
활동지 | 청송의진 - 경상북도 청송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청송의진 참모 |
[정의]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개설]
신동호(申東鎬)[1842~1920]는 1896년 3월 창의(倡義)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참모(參謀)에 선임되어 청송의진의 편제를 정비하였다.
[가계]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백(敬伯). 1842년 청송군 현서면 복리[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복리]에서 안동 유생 이야순(李野淳)의 문인이었던 부호군(副護軍) 신홍운(申弘運)과 어머니 함양박씨(咸陽朴氏)의 2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숙부 신홍건(申弘建)의 양자로 들어갔다. 신홍건의 집안은 파천면 중평리에 세거하고 있는 풍우정(風于亭) 신지(申址)의 후예이며, 송대(松臺) 신벌(申橃)의 8세손이다.
[활동 사항]
신동호는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에 참여하였다. 1896년 3월 16일 대장기를 세우고 창의한 청송의진은 창의장(倡義將) 심성지(沈誠之)를 비롯하여 부장(副將) 조성박(趙性璞), 중군장(中軍將) 김대락(金大洛), 좌익장(左翼將) 김상길(金相吉), 우익장(右翼將) 남두희(南斗凞), 사병도총(司兵都摠) 남승철(南昇喆), 의영도지휘사(義營都指揮使) 서효원(徐孝源) 등을 추대하여 진용을 갖추었다. 그 뒤 청송의진에서 군비의 효율적인 모집과 운용을 위해 4월 6일과 4월 29일 두 차례에 걸쳐 진용을 정비할 때 신동호는 참모에 임명되었다.
신동호는 청송의진의 참모로서 진용을 정비하였다. 4월 6일 청송의진의 효율성과 재정 절약을 위해 진영을 3영(營)으로 합하고, 참모 4인과 서기(書記) 6인으로 편성하여 비용을 절감하였다. 4월 29일에는 청송의진의 휘하 각 부대를 창의장 중심으로 편성하여 상영(上營)[총영(摠營) 혹은 내영(內營)]과 그 아래 각 영으로 편제하였다. 상영은 대장을 중심으로 부장, 그 아래 중군(中軍)과 좌·우익장, 그리고 각 영은 사병도총과 소모장(召募將)으로 편제하였다. 신동호는 의병 부대의 직책과 역할을 매우 정확하게 인식하고 진용을 편성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청송의진의 진용은 창의 초기부터 해산까지 큰 변동이 없이 유지되었고, 전투 의병으로서 효율적인 운용도 가능하였다. 1900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