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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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勳 |
영어공식명칭 | Shim Hun |
이칭/별칭 | 청전훈(靑田勳)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집필자 | 허종 |
[정의]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청송(靑松). 창씨명은 청전훈(靑田勳). 1929년 1월 16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서 아버지 심상만(沈相万)과 어머니 의성김씨(義城金氏) 사이에서 6남 4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김헌춘(金憲春)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1942년 3월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의 파천국민학교(巴川國民學校)를 졸업하고, 1942년 4월에 안동공립농림학교(安東公立農林學校)에 입학하였다. 1944년 3학년 재학 중 선배의 권유로 항일비밀결사 조선회복연구단(朝鮮回復硏究團)에 가입하였다. 조선회복연구단은 안동농림학교 학생 황병기(黃炳基), 권영동(權寧東), 이갑룡(李甲龍), 장인덕(張寅德) 등이 일제의 패망을 예상하고 독립운동을 펼쳐 독립을 쟁취하려는 목적으로 결성한 비밀결사였다. 조선회복연구단은 일제 관공서를 파괴하여 후방을 교란하고, 연합군의 상륙을 지원하여 독립을 쟁취한다는 독립운동 방략을 세웠다. 이를 위해 조직 산하에 참모부, 연락부, 교화부, 신풍부(神風部), 특공부(特功部)를 두어 단원들의 체력 증진을 위해 무술을 연마하고 통신 절단 등의 기술을 익혔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에서 수세에 몰리면서 한국인 청년들을 병력으로 동원하기 위해 수업 연한을 단축시키자, 조선회복연구단의 활동을 주도하던 단원들이 졸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조선회복연구단은 단원들이 졸업할 경우 활동이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하여 무장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조선회복연구단은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된 또 다른 항일비밀결사 단체인 명성회(明星會)와 연합하여 1945년 2월 안동농림학교의 무기고를 공격하여 무기를 확보한 뒤 안동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교통과 통신을 차단하고 인근의 의성까지 진출하며, 무장 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대구에 주둔한 일본군 제24부대가 출동할 경우 결전을 벌인다는 계획이었다.
거사를 추진하던 중 조선회복연구단의 단원들이 주고받은 편지 문제로 일부 단원이 피체(被逮)되어 연기하였다가, 다시 일제가 육군 기념일로 제정한 3월 10일에 거사를 단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앞서 피체된 단원의 조사 도중 단원 명단을 포함한 조직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1945년 3월 10일 일제 경찰에 피체되었다. 이때 조선회복연구단원이었던 심훈도 함께 피체되어 미결 상태에서 옥고를 겪다가 8.15광복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8.15광복 후 안동농림학교를 졸업하고, 6.25전쟁 때 미군 장교의 통역관으로 활동하였다. 2007년 5월 2일 사망하였다.
[묘소]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의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9년에 대통령 표창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