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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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禹永朝 |
영어공식명칭 | Woo Yeongjo |
이칭/별칭 | 성장(聖章),방운(訪雲),우창길(禹昌吉),우영조(禹永祚)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70년 10월 15일 - 우영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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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6년 3월 - 우영조 산남의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10월 - 우영조 산남의진 청송동부진 중군장 역임 |
몰년 시기/일시 | 1963년 03월 02일 - 우영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3년 - 우영조 건국포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우영조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07년 9월 21일[음력 8월 14일] - 신성전투 |
출생지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교하로 246-1[하의리 675]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교하로 246-1[하의리 675] |
활동지 | 산남의진 - 경상북도 청송군 |
활동지 | 산남의진 - 경상북도 영천시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산남의진 청송동부진 중군장 |
[정의]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개설]
우영조(禹永朝)[1870~1963]는 1906년 3월 결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진보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다. 1907년 10월 9일 입암전투(立巖戰鬪) 이후, 서종락(徐鍾洛)과 함께 청송 지역 유격대를 맡아 활동하였다. 제3대 대장 최세윤(崔世允)이 지역 분대를 중심으로 한 유격전을 구상하자 청송동부진을 맡아서 불굴의 항전을 전개하던 서종락부대(徐鍾洛部隊)의 중군장(中軍將)으로 활동하였다.
[가계]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성장(聖章), 호는 방운(訪雲). 이명은 우창길(禹昌吉) 혹은 우영조(禹永祚). 1870년 10월 15일 청송군 부동면[현 주왕산면] 하의리 675번지에서 태어났다. 한말 의흥집포진(義興戢捕陣)과 청송약포진(靑松約炮陣)에 종사하며 화적(火賊) 진압에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우영조는 1906년 3월 창의한 산남의진이 경상도 일원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진보 지역의 소모를 담당하였다. 1906년 4월 창의장 정용기(鄭龍基)가 영일군 신광면 우각동(牛角洞)에서 경주진위대(慶州鎭衛隊) 참령(參領) 신석호(申錫鎬)의 간계에 속아 체포되었다가 부친 동엄(東广) 정환직(鄭煥直)의 주선으로 석방된 뒤, 1907년 8월 의병진을 다시 결성하였다. 이때 우영조는 재입대하였다.
1907년 10월 7일 입암전투에서 정용기를 비롯하여 이한구(李韓久), 손영각(孫永珏), 권규섭(權圭燮) 등의 지휘부가 전사한 뒤, 곧이어 10월 9일 산남의진은 정환직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진용을 정비하였다. 당시 청송 지역에서는 중군장 이세기(李世基), 좌포장(左砲將) 임용상(林龍相), 군문집사(軍門執事) 김진영(金震榮), 장영수위(將營守衛) 배연집(裵淵楫), 진군지휘(進軍指揮) 홍우섭(洪禹燮) 등이 참여하였다. 우영조는 서종락과 함께 산남의진의 청송 지역 유격대를 맡아 1907년 음력 8월 14일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서 신성전투(薪城戰鬪)를 치르는 등 대일 항전을 벌였다.
1907년 12월 11일 정환직이 순국한 뒤, 산남의진의 의병장으로 추대된 최세윤이 북상 계획을 중단하고 경상도를 중심으로 지구전을 계획하여 24개 지역, 79명으로 구성된 지역 활동 책임자를 선정하였다. 이때 서종락은 산남의진의 지역 분대인 청송동부진를 지휘하며 주왕산(周王山)을 중심으로 청송읍과 부동면[현 주왕산면], 부남면 일대에서 활동하였고, 우영조는 서종락부대의 중군(中軍)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2월 우영조는 서종락의 휘하에서 총기를 휴대하고 청하군 죽장면 상오사리(上五舍里)의 이재원(李在元)으로부터 소 1필을 군수품으로 수집하였고, 같은 해 3월 청송군 현북면 고와곡동(高臥谷洞) 박태래(朴泰來)로부터 70여 명의 석식을 제공받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0년 2월 16일 소위 강도죄로 기소되어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3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