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8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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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基烈 |
영어공식명칭 | Yoon Giyeol |
이칭/별칭 | 윤무건(尹武建)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78년 3월 23일 - 윤기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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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6년 3월 - 윤기열 산남의진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1월 - 윤기열 이세기의 휘하에서 의병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917년 03월 15일 - 윤기열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0년 - 윤기열 건국포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윤기열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구천리 765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구천리 765 |
활동지 | 산남의진 - 경상북도 영천시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개설]
윤기열(尹基烈)[1878~1917]은 1906년 3월 결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창의 과정에서 지례(知禮)·고령(高靈)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으며, 그 후 2초장(哨將)·도포장(都砲將) 등을 맡았다. 1908년 1월 이후에는 이세기(李世紀)의 휘하에서 포항 장기읍(長鬐邑)을 공격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이명은 윤무건(尹武建). 1878년 3월 23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구천리 765번지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윤기열은 1906년 3월 창의한 산남의진이 경상도 일원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지례(知禮)·고령(高靈)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다. 산남의진이 결성된 뒤 청송 출신의 지사들과 함께 참여하여 2초장, 도포장 등에 임명되어 의성, 청송, 진보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10월 7일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정용기(鄭鏞基)를 비롯한 이한구(李韓久), 손영각(孫永珏), 권규섭(權圭燮) 등의 지휘부가 전사한 뒤, 의병장으로 추대된 정환직(鄭煥直)마저 1907년 12월 11일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이후 윤기열은 1908년 1월 후봉장(後鋒將) 이세기와 함께 약 60명의 의병을 이끌고 포항 장기를 공격하여 경찰주재소를 소각하고 일본 경찰을 사살한 뒤 분파소(分派所), 세무서, 우체소, 경찰사택을 불태우는 등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1908년 의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일본군 모리이타로[森伊太郎]를 사살하고 군도(軍刀)를 노획하기도 하였다. 산남의진이 해산된 이후 오른쪽 다리에 입은 총상으로 1917년 3월 1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