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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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琦淳 |
영어공식명칭 | Lee Gisun |
이칭/별칭 | 이명수(李明秀),벽산명수(碧山明秀),천애(天涯)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가람실길 105[신기리 385]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집필자 | 김영범 |
출생 시기/일시 | 1918년 03월 19일 - 이기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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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41년 - 이기순 일본 주오대학 법학과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8월 - 이기순 피체 투옥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10월 - 이기순 가출옥 |
몰년 시기/일시 | 1999년 02월 26일 - 이기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0년 - 이기순 건국공로 대통령 표창 수훈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이기순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
출생지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가람실길 105[신기리 385] |
거주|이주지 | 올림픽장 - 일본 도쿄도 아시다구 치주오렌정 |
학교|수학지 | 주오대학 - 일본 도쿄 |
활동지 | 일본 도쿄 |
[정의]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기순(李琦淳)[1918~1999]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41년부터 도쿄[東京]에서 민족의식 고취와 동지 규합에 힘쓰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1943년 체포되어 옥고를 겪고, 고문으로 인한 정신질환을 오랫동안 앓았다.
[가계]
호적명은 이명수(李明秀), 창씨명은 벽산명수(碧山明秀), 호는 천애(天涯). 1918년 3월 19일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385번지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이기순은 20대 초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도[東京都] 아시다구[足立區] 치주오렌정[千住練町]의 올림픽장(莊)에 거주하면서 주오대학[中央大學] 법학과를 다녔다. 재학 중인 1941년 4월에 동지들과 함께 3인조 및 9인조의 독립운동 결사대를 조직하고, 조선인 집단 거주지를 방문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또한 동포 유학생 및 사회인들을 대상으로 동지 규합에도 힘을 쏟았다. 1942년부터는 일제의 기만적인 지원병 제도를 비판하며 저항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일제 정보망에 포착된 결과, 1943년 8월 도쿄경시청에 붙잡혀가 혹독한 취조를 당하였다. 그해 11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도쿄지방재판소 검사국으로 송치되고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취조 당시 받은 혹독한 고문의 여파로 정신질환을 앓게 되어 1944년 10월 스가모형무소[巢鴨刑務所]에서 가출옥하였는데, 판결 선고 시점과 형량은 확인되지 않는다. 1945년 8.15광복을 맞은 후에도 고문 후유증이 계속되어, 1999년 2월 26일 향리에서 사망할 때까지 고통을 겪었다.
[상훈과 추모]
1980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으로 서훈이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