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8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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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瀅 |
영어공식명칭 | Lee Hye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집필자 | 권영배 |
출생 시기/일시 | 1886년 - 이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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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이형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이형 체포 투옥 |
몰년 시기/일시 | 1949년 - 이형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이형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26일~27일 -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 |
출생지 | 경상도 청송도호부 사촌리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사촌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사촌리 |
활동지 | 화목장터 - 경북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형(李瀅)[1886~1949]은 1919년 3월 27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에서 일어난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활동 사항]
이형은 일찍부터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반대하며 조선의 독립을 갈망하였다. 그러던 중 조현욱(趙炫郁)과 신태휴(申泰烋) 등이 1919년 3월 26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화목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자신도 적극 나서 주동자로 활동할 것을 결심하였다. 이형은 먼저 비밀리에 큰 태극기와 시위 군중에게 나누어 줄 작은 태극기 등을 준비하였다.
이형은 1919년 3월 26일 화목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다음 날 화목장터로 달려가 오후 1시경 모여 있는 군중에게 준비한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국기를 높이 흔들면서 선두에서 큰 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 시위를 선도하였다. 이때 조병국(趙柄國)이 말을 탄 채 만세 시위 행렬을 지휘하여 시장으로 들어왔다. 군중의 호응과 참여는 계속되었다. 뒤늦게 황급히 출동한 청송경찰서 경찰들은 칼을 빼어 휘두르는 동시에 시위대를 향하여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부상자가 발생하면서 오후 6시경 군중은 모두 해산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형은 주동자로 잡혀 1919년 4월 9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형은 이에 불복하여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으며, 다시 상고하였으나 이 역시 같은 해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원심대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