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8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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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奎洛 |
영어공식명칭 | Cho Gyurak |
이칭/별칭 | 중서(中瑞),옥하(玉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35년 - 조규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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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6년 3월 - 조규락 청송의진 입진 |
몰년 시기/일시 | 1909년 03월 22일 - 조규락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7년 - 조규락 건국포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896년 5월 14일 - 감은리전투 |
출생지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
활동지 | 청송의진 - 경상북도 청송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청송의진 지휘사 |
[정의]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개설]
조규락(趙奎洛)[1835~1909]은 1896년 3월 결성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지휘사(指揮使)로 활동하였다.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중서(中瑞), 호는 옥하(玉下). 1835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서 아버지 조성안(趙性安)과 어머니 고성이씨(固城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절공(貞節公)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후예로 입향조 망운(望雲) 조지(趙址)가 청송 안덕(安德)에 들어와 살면서 그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활동 사항]
조규락은 1896년 3월 창의한 청송의진에 참여하였다. 1896년 3월 16일 대장기를 세우고 창의한 청송의진은 창의장 심성지(沈誠之)를 비롯하여 부장(副將) 조성박(趙性璞), 중군장(中軍將) 김대락(金大洛), 좌익장(左翼將) 김상길(金相吉), 우익장(右翼將) 남두희(南斗凞), 사병도총(司兵都摠) 남승철(南昇喆), 의영도지휘사(義營都指揮使) 서효원(徐孝源) 등을 추대하여 진용을 갖추었다. 그 뒤 청송의진에서는 군비의 효율적인 모집과 운용을 위해 4월 6일과 4월 29일 크게 두 차례에 걸쳐 진용을 정비하였다. 4월 29일 참모(參謀) 신동호(申東鎬)의 제안에 따라 각 부대를 창의장 중심으로 재편성하여 상영(上營)[총영(摠營) 혹은 내영(內營)]과 그 아래 각영(各營)으로 편제를 정비하였다. 이때 조규락은 심규(沈硅)와 함께 지휘사에 선임되었다.
조규락은 청송의진의 지휘사로서 5월 9일 흥해출진소(興海出陣所) 설치, 5월 13일 의성연합의진(義城聯合義陣) 결성과 5월 14일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 그리고 5월 22일 영덕출진소(盈德出陣所) 설치 등에 참여하였다. 청송의진이 고종의 해산 조칙(詔勅)에 따라 진영을 해산하는 8월까지 활동하였다. 1909년 3월 22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옥하집(玉下集)』을 남겼다.
[상훈과 추모]
199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