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8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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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圭明 |
영어공식명칭 | Cho Gyumyeong |
이칭/별칭 | 조용하(趙龍河)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영배 |
출생 시기/일시 | 1860년 - 조규명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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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6년 - 조규명 안동의진 입진 |
활동 시기/일시 | 1896년 - 조규명 태봉전투 참전 |
몰년 시기/일시 | 1935년 - 조규명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5년 - 조규명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경상도 청송도호부 창양리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창양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창양리 |
활동지 | 경상북도 안동 |
활동지 | 경상북도 상주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의관 |
[정의]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개설]
조규명(趙圭明)[1860~1935]은 1896년 김도화(金道和)가 이끄는 안동의진(安東義陣)에 입진하여 경북상도 북부 지역 7읍 연합의진(聯合義陣)이 추진한 함창 태봉전투(胎封戰鬪)에 참전하였으며, 의관(議官)을 지냈다.
[활동 사항]
조규명은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과 단발령(斷髮令)에 분노하여 경상북도 안동 지방에서 김도화가 이끄는 안동의진에 입진하여 활동하였다. 그 뒤 1896년 3월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연합의진이 감행한 상주 함창의 태봉전투에서도 안동의진에 소속되어 참전하였다. 다만 자료의 부족으로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어 짐작해 볼 뿐이다.
김도화는 안동의진의 제2대 대장이었다. 1896년 3월 14일 대장직에 올라 진용을 개편하고, 예안·청송·진보 등 주변 지역으로 소모관(召募官)을 파견하여 병사를 모집하였다. 조규명도 이 무렵 안동의진에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안동의진은 1896년 2월 호좌의진(湖左義陣) 소모장(召募將) 서상렬(徐相烈)의 제안을 받아들여 경상북도 북부 지역 여러 의진과 함께 경상북도 예천에서 연합의진을 결성하였다. 이때 안동의진은 본영 군사 250명으로 회맹(會盟)에 참가하였다. 연합의진은 3월 29일 안동의진을 선두로 아침부터 온종일 함창 태봉에 주둔한 일본군 병참 부대를 향해 공격하였지만, 일본군의 강력한 저항과 우세한 무기에 밀려 참패하고 말았다. 조규명도 이때 안동의진에 소속되어 이 전투에 참전하였던 것 같다.
조규명은 태봉전투에서 패한 뒤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창양리로 물러나 일송정(逸松亭)이란 건물을 짓고 그곳에 은거하였다. 청송군 안덕면 문거리에 살았던 조규명이 이곳으로 들어와 점차 마을을 이루니 이때부터 이 마을을 새로운 창양이란 뜻에서 신창(新昌)이라 부르게 되었다.
[상훈과 추모]
2005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