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8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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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性璞 |
영어공식명칭 | Cho Seongbak |
이칭/별칭 | 형옥(荊玉),영담(嶺潭)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45년 - 조성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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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6년 3월 - 조성박 청송의진 부장 및 현서면 외방장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904년 07월 19일 - 조성박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7년 - 조성박 건국포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896년 5월 14일 - 감은리전투 |
출생지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
활동지 | 청송의진 - 경상북도 청송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청송의진 부장|현서면 외방장 |
[정의]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개설]
조성박(趙性璞)[1845~1904]은1896년 3월 결성된 청송의진(靑松義陣)의 부장(副將) 및 현서면 외방장(外防將)에 임명되어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형옥(荊玉), 호는 영담(嶺潭). 1845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에서 아버지 조섬호(趙暹祜)와 어머니 평산신씨(平山申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절공(貞節公) 어계(漁溪) 조려(趙旅)의 후예로 입향조 망운(望雲) 조지(趙址)가 청송 안덕(安德)에 들어와 살면서 조지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활동 사항]
조성박은 1896년 3월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896년 3월 8일 안동의진(安東義陣)의 소모장(召募將)인 유시연(柳時淵)이 청송으로 들어와 청송군 관아의 군기(軍器) 탈취를 시도하고 거의를 촉구하는 격문을 청송 유림들에게 보냈다. 이에 3월 10일 청송향교(靑松鄕校)의 향원(鄕員) 100여 명과 함께 토적복수(討賊復讐)를 기치로 창의를 추진하였다. 3월 12일 청송 유림 200여 명과 함께 향회(鄕會)를 개최하여 창의하기로 하고, 이날 오후 객사(客舍)에서 창의장(倡義將)으로 심성지(沈誠之)를 추대하였다.
3월 15일 우익장(右翼將) 권성하(權成夏), 좌익장(左翼將) 김상길(金相吉)을 내정하고 참모(參謀)와 서기(書記) 이하를 선발하였는데, 이때 조성박은 부장에 임명되었다. 5월 12일 관군에게 패한 의성의진(義城義陣)과 이천의진(利川義陣)이 청송으로 들어오자, 5월 13일 이들과 진용을 합쳐 의성연합의진(義城聯合義陣)을 결성한 뒤, 5월 14일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에 참여하였다. 그 외 5월 9일 흥해출진소(興海出陣所) 설치와 5월 22일 영덕출진소(盈德出陣所) 설치에 참여하는 등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5월 24일 청송의진은 국왕 고종의 해산 칙유문(勅諭文)을 받고, 5월 25일 청송군 관내 8개 면으로 분진(分陳)하여 면군체제(面軍體制)로 전환하였다. 이리하여 사병도총(司兵都摠) 남승철(南昇喆)을 현동(縣東)과 현남(縣南), 중군(中軍) 김대락(金大洛)을 현북(縣北), 선봉장(先鋒將) 홍병태(洪秉泰)를 현서(縣西), 우익장 서효신(徐孝信)을 부동(府東), 좌익장 권성하(權成夏)를 부내(府內), 소모장 심능장(沈能璋)을 부서면(府西面) 등의 외방장에 임명하였는데, 조성박은 현내면(縣內面)의 외방장에 임명되었다. 청송의진이 진영을 해산하는 8월까지 활동하였다. 1904년 7월 19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