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8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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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鏞元 |
영어공식명칭 | Cho Yongwo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집필자 | 권영배 |
출생 시기/일시 | 1899년 - 조용원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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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조용원 흠치교 입교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조용원 독립운동자금 모금 |
몰년 시기/일시 | 1979년 - 조용원 사망 |
출생지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명당리 |
활동지 | 경상북도 청송군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조용원(趙鏞元)[1899~1979]은 1920년 흠치교(吘哆敎)에 들어가 경상북도 청송 일대에서 교도 모집과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조용원은 1920년 음력 9월 흠치교에 입교하였다. 흠치교는 전라북도 정읍에 본부를 두고 차경석(車京錫)을 교주(敎主)로 표면적으로는 종교 활동을 하였으나 실제로는 한국 독립을 목적으로 하였다. 흠치교는 교도(敎徒)들에게 1924년에 한국이 독립되는데, 독립을 이루기 위해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고 교세를 확장해야 한다고 선전하였다. 이러한 취지로 흠치교는 당시 경기도, 충청남도, 전라도, 경상북도에서 널리 확산되고 있었다.
이 무렵 조용원은 경상북도 청송에서 흠치교의 취지에 찬동하고 이에 가입한 뒤 가르침에 따라 치성비(致誠費)라는 명목의 독립자금 모금과 교도 모집에 힘썼다. 조용원은 흠치교를 잘 믿으면 둔신술(遁身術)을 알아 전쟁에서 패할 수가 없으므로 1924년에는 독립을 할 수 있고, 개조(開祖) 강일순(姜一淳)의 고족제자(高足弟子) 차경석이 조선의 황제가 되어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면 교도들은 기능에 따라 각기 관직에 오르게 된다고 선전하며 권유하였다.
조용원은 이러한 활동을 하던 중 1921년 2월경 일본 경찰에 잡혀 즉결 처분으로 구류형을 살다가 1921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조용원은 다시 항소하여 1921년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미 경찰범 처벌 규칙 위반으로 구류형에 의한 형의 집행을 마쳤다는 판결로 면소(免訴) 처분되어 풀려났다.
[상훈과 추모]
2009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