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869
한자 金基庸
영어공식명칭 Kim Giyong
이칭/별칭 명숙(明淑),사실(士實),능백(能伯),김명숙(金明淑),김기용(金基用)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3년 5월 13일연표보기 - 김기용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5일 - 김기용 진보시장 만세시위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6일 - 김기용 화목장터 만세시위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28년 3월 - 김기용 장진홍의 영천경찰서 폭파의거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38년 07월 26일연표보기 - 김기용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0년연표보기 - 김기용 건국포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김기용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2003년 - 김기용 추모비 경상북도 영천시 서부동 마현산에 건립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26일~27일 -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
출생지 경상북도 청하군 죽북면 오사리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천군 영천읍 창구리 - 경상북도 영천시 창구동
활동지 진보시장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 지도보기
활동지 화목장터 -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 지도보기
활동지 영천경찰서 - 경상북도 영천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청송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기용(金基庸)[1883~1938]은 1919년 3월 25일의 청송 진보시장 만세시위운동, 3월 26일의 현서면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 그리고 1928년의 3월 장진홍(張鎭弘)의 영천경찰서 폭파의거에 참여하였다.

[가계]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명숙(明淑) 또는 사실(士實), 호는 능백(能伯), 이칭은 김명숙(金明淑).1883년 5월 13일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에서 출생하여, 1919년 영천시 창구동으로 이주하였다.

[활동 사항]

김기용은 1919년 3월 25일 청송 진보시장 만세시위에 앞장섰으며, 이튿날 조현욱(趙炫郁)·조병국(趙柄國) 등과 함께 현서면 화목장터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3개월간 구금되었다. 석방된 후 김기용은 영천시 창구동으로 이주하여 숙박업에 종사하였다.

1927년 10월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투척한 장진홍은 제2차 의거를 계획하였다. 1928년 3월 김기용을 찾아온 장진홍은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의거의 책임자였던 전후 사정을 말하며, 결사대원이 되어 함께 활동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장진홍과 함께 폭탄으로 파괴 암살을 감행하기로 하였다. 김기용은 영천경찰서와 친일 부호인 이인석(李仁錫)의 집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하고, 장진홍으로부터 폭탄 2개를 전달 받아 투척을 위한 예행 연습을 하며 기회를 노리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0년 4월 2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및 살인예비죄로 징역 5년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그때 함께 옥고를 치르고 있던 장진홍이 1930년 6월 5일 옥중에서 변사하였다. 이에 김기용은 그 진상을 추궁하며 옥중 투쟁을 전개하다가 건조물 파괴죄로 8개월의 가중처벌을 받고 1935년 12월에 만기 출소하였다. 감옥에서 얻은 병으로 1938년 7월 26일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0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003년 5월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에서 영천시 서부동 마현산(馬峴山)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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