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5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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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完伊 |
영어공식명칭 | Kim Wan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81년경 - 김완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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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6년 - 김완이 이하현의진 활동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 김완이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06년 4월 - 장수령전투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06년 4월 - 오누지전투 |
출생지 | 경상북도 진보군 북면 병옥리 -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병옥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진보군 북면 병옥리 -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병옥리 |
활동지 | 경상북도 진보군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
활동지 | 경상북도 영양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개설]
김완이(金完伊)[1881경~?]는 1906년 3월부터 4월 24일까지 이하현의진(李夏鉉義陣)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김완이는 1881년경 경상북도 진보군 북면 병옥리[지금의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병옥리]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3월 경상북도 진보·영양 일대에서 활동하던 이하현의진에 참여하였다. 이하현은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 출신으로 자는 하현(夏鉉)이고, 본명이 현규(鉉圭)이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뒤, 청송 주왕산(周王山) 대전사(大典寺)에서 진용을 편성하고, 각지에 통문을 보내 강원도와 경상도 일원에서 많은 의병들을 모집하였다. 청송 주왕산과 봉화 청량산(淸凉山) 등지에서 훈련과 대오를 갖춘 뒤, 1906년 2월 19일 울진 불영사(佛影寺)에 본부를 정하고 이강년(李康秊) 휘하의 김현규(金顯奎), 삼척의 김하규(金河奎), 강릉의 황청일(黃淸一) 등 약 500명이 모인 가운데 영양·안동·청송·진보 4군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이하현의진은 1906년 2월 이후 울진 근북면과 근남면 매화리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 해군 망루를 기습하여 격파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6년 4월에는 진보의 장수령(長水嶺)에서 일본군 헌병 오장(伍長)[하사 계급] 무토[武藤]와 경상북도 지사 마쓰오[松尾]가 이끄는 부대와 수차례 교전하였고, 진보 남쪽 ‘오누지’ 주변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에 이어 파천면 어천(漁川)까지 추격해서 무토와 마쓰오를 비롯한 일본군 10여 명을 사살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김완이는 1906년 4월 24일 이하현의진의 의병 30여 명과 함께 진보·영양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6월 9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공소하였지만, 같은 해 7월 3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