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5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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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鍾達 |
영어공식명칭 | Kim Jongda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64년 - 김종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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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9년 - 김종달 신돌석의진에서 의병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909년 08월 01일 - 김종달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6년 - 김종달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07년 - 정미의병 |
출생지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백자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백자리 |
활동지 | 경상북도 영양군 - 경상북도 영양군 |
활동지 | 경상북도 영해군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
활동지 | 경상북도 영덕군 - 경상북도 영덕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근대 개항기 경상북도 청송 출신의 의병.
[개설]
김종달(金鍾達)[1864~1909]은 청송 출신의 의병으로 1906년 창의한 신돌석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1909년 8월 11일 현서면 백자리에서 체포되어 총살,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김종달은 1864년 경상북도 진보군(眞寶郡) 동면(東面)백자리(柏子里)[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백자리]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3월 13일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창의(倡義)한 신돌석(申乭石)[1878~1908]은 경상북도·강원도 등 동해안 일대에서 기민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돌석은 일월산(日月山)·백암산(白巖山)·대둔산(大遯山)·동대산(東大山) 등지에서 유격전을 전개해 일본군을 위협하였다. 1907년 8월 군대 해산 이후 의병들은 다시 봉기하였다[정미의병]. 신돌석(申乭石)의진(義陣)은 해산된 군인들의 합세로 기세를 크게 떨치며 경상북도 영양·진보·청송·경주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기도 하였다. 1908년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였다가 돌아온 후 경상북도 평해[경상북도 울진 지역의 옛 지명]·영양·울진·봉화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신돌석은 1908년 11월 18일 영덕 눌곡(訥谷)에서 김상열(金相烈) 형제들에게 피살되었다.
김종달은 신돌석의진에 가담하여 경상북도 영양, 영해, 영덕 등지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수집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벌였다. 1909년 8월 11일 진보군 동면 백자동 산속에서 진보 화매리 출신의 이수목(李守睦), 청송 마평리 출신의 서고락(徐高洛) 등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들은 가지고 있던 지폐 1원과 엽전 428문(文), 그리고 양총 1정을 압수당하고, 영덕경찰서로 압송되던 중에 영덕군(盈德郡) 동면(東面) 주동(酒洞)에서 탈출하다가 총상을 입고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