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15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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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容台 |
영어공식명칭 | Park Yongtae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88년 - 박용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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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음력 3월 17일 - 박용태 군자금 모집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12월 6일 - 박용태 징역 5년 선고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
활동지 | 신돌석의진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 출신의 의병.
[개설]
박용태(朴容台)[1888~?]는 경상북도 진보에서 신돌석의진에 참여한 이후 1908년 음력 3월 17일경 이 참봉 등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진보군 남면 감곡동(甘谷洞)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박용태는 1888년경 경상북도 진보군 상리면(上里面)[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에서 태어났다. 1908년 진보군 등지에서 신돌석(申乭石)의진(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신돌석은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해에서 영릉의병장(寧陵義兵將)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창의하여 영해, 울진, 영양, 청송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1월 13도창의대진소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기 위해 북상했다가 영해로 귀환하여 1908년 겨울 피살될 때까지 경상북도 북부 지역 및 동해안 일대에서 불굴의 항전을 전개하였다.
박용태는 신돌석의진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음력 3월 17일경 이 참봉(李參奉) 외 1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진보군 남면 감곡동 이인두(李仁斗)로부터 군자금으로 엽전 30냥을 수집하였고, 같은 날 밤 이 참봉 등 2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이용호(李容鎬)로부터 한지(韓紙) 2속(束)을 군수품으로 수집하였다. 이후 박용태는 체포되어 이른바 강도죄로 기소되어 1909년 12월 6일 대구지방법원 형사부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