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3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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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香徒 |
영어공식명칭 | Hyangd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김창석 |
[정의]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통일신라 시대 불교 신앙 공동체.
[개설]
향도(香徒)는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통일신라 시대 불교 신앙 공동체이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에 있는 국보 제63호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原到彼岸寺鐵造毘盧遮那佛坐像)의 등쪽에는 불상을 만들게 된 내력과 연기를 기록한 명문이 있다. “향도불명문병서 부석가불 회영귀진 천의월세 기세엄색 불경삼천광귀 일천팔백륙재이 개사괴사 조차금용 □□래철 인립원지 유원비성실 수계추자격 □□각장혼 환용비지 계진원 서이색막박□견 당천자함통륙년을유정월일 신라국한주북계철원군도피안사 성불지시 사□룡악견청 우시□멱거사 결연일천오백여인 견금석지 근불각로인(香徒佛銘文幷序 夫釋迦佛 晦影歸眞 遷儀越世 紀世掩色 不鏡三千光歸 一千八百六載耳 慨斯恠斯 彫此金容 □□來哲 因立願之 唯願卑姓室 遂棨椎自擊 □□覺長昏 換庸鄙志 契眞源 恕以色莫朴□見 唐天子咸通六年乙酉正月日 新羅國漢州北界鐵員郡到彼岸寺 成佛之時 士□龍岳堅淸 于時□覓居士 結緣一千五百餘人 堅金石志 勤不覺勞因).” 명문에 따르면, 신라 경문왕 5년(865)에 한주 북쪽에 있던 철원군에서 불교 신자 1,500여 명이 향도를 이루어 불상을 조성하였고 도피안사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향도가 불상 조영의 주체였던 것이다. 이처럼 향도는 불교 신앙 공동체로서 석탑 건립이나 불상 조영 등 불사가 있을 때 재원을 조달하고 노동력을 보태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향도는 ‘분향하여 부처님을 섬기는 무리’ 또는 ‘부처님의 뜻을 따르는 향기로운 무리’란 뜻으로, 원래 불교의 신앙 공동체로부터 출발하였다. 신라 진평왕 때 화랑 김유신이 이끌던 화랑도의 이름이 용화향도였다. 화랑도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참전하는 전사를 양성하고 평상시에는 국왕을 보필하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제정되었는데 사상적으로 미륵하생신앙이 배경이 되었다. 즉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도솔천에 있던 미륵불이 이 세상에 하생하여 속세의 왕인 전륜성왕이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신라 사람들은 이러한 미륵의 역할을 화랑들이 맡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믿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미륵선화 진자사 조를 보면, 미시랑이라는 화랑이 나오는데 미시랑이 미륵의 화신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들의 무리인 화랑도를 향도라고 불렀다는 사실은 신라 중고기(中古期)에 이미 향도 조직이 성립되어 운영되고 있었고, 향도 역시 미륵 신앙을 배경으로 한 공동체였고 일종의 신앙 결사체였음을 보여 준다.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 향도의 규모가 확대되어 군현 단위에 미치는 향도가 출현하고 성원의 숫자도 크게 늘어났다.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조성한 향도는 철원군을 단위로 하여 1,500명이 넘는 신도가 참여하고 있었다. 경상북도 예천의 개심사지 오층석탑에 명문이 남아 있는데, 고려 현종 원년(1010)에 탑을 조성하면서 지역의 미륵향도, 추향도, 그리고 지방 세력의 자체 군사력에서 기원한 광군이 참여하였는데 인원이 1만 명이 넘었다. 신라 말이 되면 향도는 신앙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해당 지역의 자치적 공동체로서 농업 노동은 물론 지역 방어를 위한 군사적 자위 공동체의 성격까지 띠게 되었다.